무기수 김신혜(42)씨의 재심 여정이 6일 시작됐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이날 오후 3시55분 김씨가 재심을 위해 광주지법 해남지원에 들어섰다. 그는 밝은 베이지색 코트와 하얀 니트를 입고 등장했다. 19년 만에 하이힐을 신어 어색한 탓에 호송차량에서 내리면서 발을 삐끗하기도 했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한 김씨는 이제 40대가 됐다. 취재진이 ‘한마디만 해달라’고 요구하자 “네, 이기겠습니다”라는 짧은 심경을 전한 뒤 이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살인사건 재심은 가당치 않다”는 주변의 우려를 보란 듯 이겨내고 재심 확정을 이끌어낸 그였다. 19년 동안 김씨가 느낀 고통과 분노, 억울함과 절망이 “이기겠다”는 한 마디에 함축돼있었다.
앞서 김씨 측은 석방 상태에서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법원에 형 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불허했다. 수사 경찰이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질러 재심을 하게 된 것이고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은 공판준비기일로 정식 심리를 시작하기 전 쟁점과 유·무죄 입증 계획을 정리하는 자리다. 공판준비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19년 전 아빠가 죽은 그날, 사실은 이랬다
친부 살해혐의를 받고 2001년부터 무기수 삶을 살고 있는 김씨. 사건 초기 범행을 모두 인정하더니 현장검증 직전부터 돌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2000년 3월 7일부터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2001년 3월 23일까지 김씨에게 믿기지 않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아버지를 죽인 패륜범이 돼 있었다고 했다.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의 바닷가 작은 시골마을에 적막한 새벽이 내려 앉았다. 고요했던 마을은 금세 발칵 뒤집혔다. 버스정류장 앞에 50대 남성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나 그러기엔 시신이 이상했다. 아무런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인(死因)은 ‘약물에 의한 사망’이었다. 시신에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과 알코올이 검출됐다.
이틀 후 범인이 검거됐다. 친딸 김신혜(당시 23세)였다. 그는 수면제 30알을 양주에 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앞으로 보험 8개가 가입돼 있는 사실이 드러났고, 살해계획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도 발견됐다. 증거도 증언도 확실했다.
그 무렵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신혜가 아빠를 죽일만 했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씨의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해 언니가 대신 살해했다는 것이다. 여동생 역시 경찰에 이같이 진술했다. 살해동기까지 드러났으니 범인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현장검증을 앞두고 “절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돌연 범행을 부인했다. 무엇보다도 성추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의 무죄보다 아버지의 불명예를 벗겨달라고 호소키도 했다.
그는 뒤늦게 이 모든 계획을 고모부가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사건 이후 고모부로부터 “(김씨의) 남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때문에 자신이 동생의 죄를 덮어쓰고자 거짓자백을 했다고 했다. 여동생 역시 고모부로부터 “아버지가 성추행했다고 진술해야 언니가 빨리 풀려난다”는 조언을 듣고 허위진술을 했다고 털어놨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정작 고모부는 사건 당일부터 지금까지 모든 증언이 오락가락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입된 보험은 모두 보험금을 탈 수 없는 상태였다. 수면유도제나 양주 같은 결정적 물증도 없었을 뿐더러 수사 과정 중 김씨는 경찰로부터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누드사진을 퍼트리겠다는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영장도 없이 그의 집을 수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인 1조의 규칙도 어겼다. 하지만 정당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며 문서를 조작했다. 문제가 된 살해계획서는 연극배우를 하며 글을 썼던 그가 써놓은 극 시나리오로 밝혀졌다. ‘완전’ 일치한다던 살해계획서는 어느샌가 ‘근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인정해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각각 기각되면서 2001년 3월 23일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계속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교도소 내 기결수들이 하는 노역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죄가 없는데 나라에서 시키는 노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 내에서는 그를 ‘독한년’이라고 부른다.
무기수 김신혜, 재심 대장정 시작… 아쉬운 점은
모두가 “한국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살인사건의 재심은 가당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1월,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경찰이 2인 1조 압수수색 규정을 어기고 영장 없이 김씨 집을 쳐들어가놓고도 허위로 수사기록을 작성했고,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 등을 재심 사유로 들었다. 같은 해 11월 18일 재판부는 “수사에 관여한 경찰관의 직무에 관련된 범죄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후 지난해 9월 28일 재심이 확정됐다. 재심 절차에만 3년이 걸린 셈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경찰관 직권 남용 등의 이유로 재심 개시 결정을 하기는 하지만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때문에 김씨의 형 집행을 정지하지는 않았다.
재심 개시 시점을 결정하는 일 역시 녹록지 않았다. 검찰의 항고와 재항고가 이어지면서 재심 개시 시점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있었던 지난해 10월로 연기됐다. 김씨 측이 재판부 이송 및 국민참여재판 요청을 하면서 또 한 번 미뤄졌다.
마침내 6일, 무기수 김씨의 재심 여정이 본격 시작됐다. 법원은 수사 과정 위법성만 문제 삼았지만, 향후 재심 과정에서 김씨의 유·무죄를 가릴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심의 경우에도 일반 재판과 마찬가지로 검찰과 피고인 한쪽이라도 불복할 경우 항고가 가능하다.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받을 수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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