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국민들을 살려주세요. 미세먼지 때문에 다 죽게 생겼습니다. 대책 안 세울 겁니까?”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공습했다. 매번 최악이라고는 했지만 이번엔 말 그대로 ‘최악’이다. 5일 서울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서울의 1시간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145㎍/㎥를 기록했다. 정부가 초미세먼지 관측을 시작한 2015년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한 지난 1월 14일 129㎍/㎥를 훌쩍 넘겼다.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공포를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다. 분노의 칼끝이 향하는 곳은 청와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세먼지 관련 청원이 폭주하고 있다. 이날 하루 동안 올라온 미세먼지 관련 청원만 600개를 돌파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일주일 동안 올라온 청원은 1400개를 넘겼다. 제대로 숨 쉬고 싶다는 호소부터, 욕설이 들어간 협박까지 그 양상은 다양하지만 결국 이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미세먼지 해결책 마련’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청와대를 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임기 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세부사항을 보면 ▲임기 내에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 추진 ▲강력하고 촘촘한 미세먼지 관리대책 수립 ▲‘미세먼지 대책기구’ 설치 ▲한·중 정상외교 주요 의제로 미세먼지 대책 추진 등 네 부분으로 돼 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 공약에 따라 지난해 노후 석탄발전소 8기를 일시 가동 중단 조치했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전면 불허,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확대, 클린 디젤 정책 폐기 등 미세먼지 관련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내 요인을 없애는데 집중할 때 국민들의 시선은 ‘중국’을 향해 있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의 담판을 통해 근본적으로 미세먼지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5일 현재 미세먼지 관련 청원 중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이 ‘미세먼지 중국에 대한 항의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이라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지난달 26일 올라온 해당 청원은 일주일 만에 4만6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문재인 대통령님 미세먼지 30% 줄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중국에 할 말은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촉구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미세먼지는 중국과도 관련이 있음을 많은 국민들도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중국에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국내 문제도 있을 뿐 아니라 원인 규명도 다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15일 정례브리핑에서 미세먼지의 상당 부분이 중국과 연관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 대해 “중국과의 협력은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개소한 한중환경협력센터를 비롯한 공동조사연구 대처와 관련해 현재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는 원론적인 설명을 내놨다.
야당은 ‘문재인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년 전 반드시 미세먼지를 잡겠다며 국민 분노를 지지율 수단으로 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며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유입되는데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문재인정부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한다”며 “못하겠으면 실토하든지 아니면 당당하게 중국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이런 최악의 대기 상태가 문재인 정부 취임 후 지속돼 왔다. 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을 시기가 훨씬 지났지만 정부는 하늘만 쳐다본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이날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곳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경북과 경남 지역에서 ‘나쁨’ 수준의 농도를 보였고, 그 밖의 모든 권역에서 ‘매우나쁨’ 상태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는 대기 악화의 원인을 ‘대기 정체’와 ‘국외 미세먼지 유입’으로 꼽았다. 환경부 대기오염도 측정 시스템 에어코리아의 대기질 예측 모델 결과를 보면 중국으로부터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몰려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6일까지 최악의 대기 상태는 이어질 전망이다. 환경부는 “6일 경기남부·대전·세종·충북·전북은 ‘매우나쁨’, 그 밖의 권역은 ‘나쁨’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그 밖의 권역에서도 ‘매우나쁨’ 수준의 농도가 나타날 수 있다. 환경부는 중국발 오염물질 유입이 줄면서 오는 7일에는 대기질이 일시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맑은 공기가 허락되는 건 잠깐이다. 환경부는 “주말에는 공기질이 다시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문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