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다.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 막대한 양의 미세먼지가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나들면서 ‘초국가적 재난’이 됐다. 국경을 맞댄 당사국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때지만 책임소재를 놓고 갈등만 커지고 있다.
세계적 대기오염 연구기관 에어비주얼(AirVisual)이 5일 발표한 2018 세계 대기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초미세먼지(PM 2.5)가 농도가 가장 높았던 나라는 방글라데시였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뒤를 이었다. 세 나라는 남아시아 일대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나라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까지 퍼지며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인도의 살인적인 대기오염은 고스란히 이웃 나라 파키스탄에 영향을 미친다. 인도는 국가별 순위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심각한 국가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도시별 순위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에어비주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는 인도의 그루그람으로 연간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135.8㎍/㎥였다. 인도 북부 가지아바드가 135.2㎍/㎥ 파키스탄 동부 파이잘라바드가 130.4㎍/㎥로 뒤를 이었다. 10위권 안에 인도 내 도시가 7곳, 파키스탄 도시 2곳이었다. 8위를 기록한 중국 허톈 지역도 파키스탄과 인도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결국, 인도 전역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바람을 타고 동쪽의 파키스탄, 서쪽의 방글라데시, 멀리는 중국까지 퍼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키스탄 접경지역인 인도 펀자브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화전을 일구기 위해 벼와 밀의 그루터기를 태운다. 이때 발생한 재와 연기가 파키스탄 대기오염에 가장 큰 원인이 된다.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 대기오염 물질의 70%가 인도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도도 파키스탄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에 피해를 본다.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는 흙으로 빚은 벽돌을 가마에 넣고 굽는 전통 벽돌공장이 1만1000여곳 있다. 이 벽돌공장들에서 쏟아져 나온 불완전연소 물질과 연기들이 인도까지 날아간다.
하지만 공동대응은 더디다. 파키스탄은 인도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의 기후변화 보좌관 말릭 아민 아슬람은 최근 “우리는 화전을 제한하고 벽돌 가마 운영을 막는 조치를 했다. 하지만 인도 펀자브에서 화전을 일굴 때 생기는 연기는 줄어들지 않고 파키스탄에 두꺼운 스모그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환경보호청은 최근에야 펀자브 국경 일대에 대기질측정소를 설치해 인도와 정보 교류에 나서기로 했다. 또 인도와 파키스탄의 과학자,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곧 네팔 카트만두에서 ‘두 개의 펀자브 하나의 대기(Two Punjabs One Atmosphere)’ 행사를 열고 대기오염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하기로 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미세먼지 문제를 둘러싼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국외 요인이 최대 7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외 미세먼지는 대부분 중국에서 넘어온다.
반면 중국은 최근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고 그만큼 환경을 개선했다고 항변한다. 중국이 대기오염을 적잖이 개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에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에서 8번째로 높았다. 동아시아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많은 도시 상위 15곳도 모두 중국에 속했다. 그런데도 한국, 몽골 등 이웃 국가로 향하는 미세먼지를 해소하는 데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협력이 더디다 보니 국가별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형편이다. 한국과 태국, 중국은 인공강우 실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베트남은 하노이 시내 오토바이 운행을 차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웃 나라에서 오염물질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한계가 뚜렷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미세먼지 오염의 심각성을 알아도 막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미세먼지가 심각한 나라들이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대기질 특정소가 극히 적게 설치돼 실태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지리아 니제르 차드 등 사하라사막 남쪽의 대기오염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탄과 나무 등유 등 재래식 연료 의존도가 높고 논밭에 불을 지르는 농경법이 만연한 탓이다. 결국, 주로 사용되는 연료나 산업을 당장 바꿀 수 없어서 문제 해결이 어렵다.
미세먼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에 아이들의 피해가 특히 컸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지난 6월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5년 아프리카 지역 5세 이하 어린이 4만명이 대기오염 탓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에서도 공동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해결책을 제시하기엔 너무 가난한 탓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의 90%가 최빈국에서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개발도상국 도시의 97%가 심각한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고소득 국가 도시 중에는 49%만 오염됐다.
반면 유럽 등 선진국은 최소한의 미세먼지도 잡아내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영국은 최근 미세먼지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적은 농도의 미세먼지도 아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 영국인 부모는 대기질이 더 좋은 포르투갈에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영국은 에어비주얼이 발표한 지난해 대기오염 순위에서 전 세계 61위를 차지했다. 27위에 오른 한국에 비해 초미세먼지 농도가 절반 수준이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5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오염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700만명이 조기 사망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데이비드 보이드 유엔 인권·인권환경 특별조사관은 “대기오염은 이제 환경·건강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