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화물선의 부산 광안대교 충돌 사고 원인은 선장의 음주 운항이었다는 해경 중간 수사결과가 나왔다.
부산해양경찰서는 5일 오후 부산 영도구 부산해경서에서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5998t·승선원 15명)’의 충돌사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해경은 “씨그랜드호의 VDR(선박항해기록저장장치) 등을 분석한 결과, 충돌 사고는 음주 상태였던 선장이 판단 미숙으로 조타를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어 “씨그랜드호가 요트와 충돌한 뒤 ‘저속 우현전타와 전·후진’을 반복했다면 광안대교를 들이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러시아 선장이) 반대로 ‘고속 우현전타’하면서 배 회전 반경이 커져 광안대교와 충돌했다는 게 중간 수사 결과”라고 덧붙였다.
해경은 이날 씨그랜드호 조타실 내 CCTV에 담긴 충돌사고 직후 선원들의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해경에 따르면 씨그랜드호는 지난달 28일 오후 3시37분쯤 부산 남구 용호부두에서 출항했고, 오후 3시40분쯤 인근에 정박 중인 요트 등과 1차 충돌사고를 냈다. 이후 조타실에서는 선장이 지휘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부산 VTS(해상관제센터)와 교신할 때도 요트 충돌 여부를 알리는 대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대화 이후 “No Problem”이라며 거짓 통보를 했다. 광안대교와 충돌하기 전인 오후 4시17분쯤에는 1항사가 “XX, 배를 못 돌린다니까”라고 권고하는 음성이 녹음됐다. 그러나 선장은 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해경은 “오후 6시4분쯤 ‘이게 술의 결과다.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 절대로 안 돼’라는 선원의 말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씨그랜드호 출항 당시 부두와 10m 떨어진 곳에서 선장의 얼굴을 봤는데 술을 먹은 듯 분홍빛이었다, 흥분해서 선원들에게 고성을 질렀다’는 목격자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충돌사고 직후 해경이 선장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실시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086%였다. 해사안전법상 해상 음주 운항 단속기준은 0.03%이다.
선장이 “바람의 영향으로 선박을 조정하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당시 바람은 현수막이 살랑거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씨그랜드호 선장은 현재 해사안전법위반(음주 운항), 업무상과실선박파괴(요트 파손), 업무상과실치상(요트 승선원 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해경은 여기에 선장이 부산항 입·출항 당시 예인선을 사용하지 않은 사실도 적발, 선박의 입항 및 출항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추가해 입건했다.
이번 충돌사고로 요트 등 선박 3척과 부두시설 일부, 광안대교 하판 철구조물 등이 파손됐다. 요트에 승선해 있던 항해사를 포함한 3명이 다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확인하고 있으며, 사고를 낸 씨그랜드호는 총 2500만 달러(한화 약 275억원) 규모인 P&I보험(선주책임상호보험)에 가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