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을 재수사하고 있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2013년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로부터 청와대 압력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진상조사단은 청와대 압력 때문에 뇌물에 초점이 맞춰졌던 수사가 비교적 처벌이 가벼운 성 접대 의혹으로 변질됐을 가능성과 성 접대 의혹의 결정적 증거인 동영상과 사진 등을 복구하고도 누락시켰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단은 수사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지났음에도 김 전 차관을 소환조차 못하고 있다. 이는 진상조사단에 강제조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진상조사단은 방문조사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김 전 차관 측에 전달했지만 김 전 차관은 “할 말이 없다”며 대면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조사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의혹 당사자에 대한 직접 조사 없이 조사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SBS는 진상조사단이 2013년 당시 김 전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을 수사했던 경찰 수사팀 관계자를 최근 소환해 조사한 결과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진상조사단은 경찰 수사 초기 김 전 차관의 뇌물 수수 의혹에 초점이 맞춰졌던 수사가 성 접대 의혹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점에 주목했다. 당시 경찰이 김 전 차관을 뇌물 수수 혐의로 출국 금지까지 해놓고 뇌물 관련 수사 기록을 검찰에 넘기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고위 공무원의 뇌물 사건이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성 접대 사건으로 바뀐 셈이다. 조사단은 청와대 압력으로 수사의 초점이 바뀐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또 경찰이 3만 건이 넘는 수사 관련 자료를 검찰에 하나도 보내지 않고 누락시켰다면서 이 과정에서 청와대 압력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경찰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의 노트북 등에 저장돼 있던 사진 파일 1만6000여개, 동영상 파일 210개를 복구하고도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다. 건설업자의 친척 휴대전화 등에서 나온 사진 파일 8628개, 동영상 349개도 검찰에 전달하지 않았다. 사건 관련자인 박모씨의 휴대전화 등에 저장된 사진 파일 4809개, 동영상 파일 18개를 복구했지만 동영상 파일 4개를 빼고 나머지는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다고 진상조사단은 덧붙였다.
진상조사단은 “별장 성 접대 추가동영상이 존재할 개연성이 충분한데도 경찰은 디지털 증거를 누락했고 검찰은 이에 대한 추가 송치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김 전 차관 등에 대해 두 차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달 28일 경찰청에 진상 파악 및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진상조사단이 경찰에 요구한 구체적인 내용은 증거 복제본을 보관하고 있어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와 증거가 삭제되거나 폐기됐다면 그 일시와 송치 누락 경위 등이 무엇인지 등이다. 답변 시안은 오는 13일까지다.
경찰은 진상조사단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방대한 디지털 자료 중 사건 관련성 등을 고려해 수사에 필요한 일부를 취사선택한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모두 검사의 지휘를 받았는데 경찰이 의도적으로 송치를 누락한 것처럼 주장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4월 재수사가 시작된 지 10개월이 넘도록 김 전 차관을 소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실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진상조사단이 거듭 출석을 요구했지만 김 전 차관은 “할 말이 없다”며 소환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의 서면 진술서만 제출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수사팀 교체라는 강수를 뒀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상조사단은 출석이 어려우면 방문조사라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김 전 차관 측은 이마저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 전 차관의 대면조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는 강제조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진상조사단의 재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