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무형문화재 전수자 선정 시 여성 배제는 성차별”

입력 2019-03-04 13:29
한국학중앙연구원

국가인권위원회가 무형문화재를 전수(傳受)받는 장학생을 선발할 때 원칙적으로 여성을 배제한 것은 성(性)차별에 의한 평등권 침해 행위라고 판단했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추는 춤이라고 하더라도 부당한 차별이라고 봤다.

인권위는 4일 이 같은 조치를 한 부산광역시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기능·예능 수준 등을 기준으로 장학생을 선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8월 남성 춤인 ‘동래한량(閑良)춤’ 장학생 선정 과정에서 원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 추천자를 배제한 것을 두고 부당한 성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동래한량춤은 2005년 12월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됐다. 한량들의 즉흥 춤을 표현한 것으로 일정한 형식이나 구성 방식이 없다.

부산광역시는 문화재보호법에서 동래한량춤을 남성 춤으로 명시했고, 생물학적 차이로 여성은 남성이 표현할 수 있는 춤 동작을 구사하기 어려워 원형의 변형 또는 훼손, 문화재적 가치 저하가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부산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6년 3월 관련법 시행 이후 무형문화재 보전·진흥의 기본원칙은 ‘원형’에서 ‘전형’ 유지로 바뀌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래한량춤의 전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남성 무용가 계보로만 전승돼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원형은 해당 무형문화재의 원 상태 그대로의 모습과 불변성을 의미한다. 전형은 해당 무형문화재의 본질적인 특성은 유지하되 부수적인 요인들의 다양한 변화, 전승적 가변성을 인정한다.

인권위는 “원형은 불변성을 의미하는 반면, 전형은 가변성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남성 춤으로서 동래한량춤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부산시의 주장은 무형문화재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동래한량춤과 비슷한 경남 한량무는 여성이 전수 교육 조교와 보유자 후보로 지정된 점, 교방춤의 하나로 대표적 여성춤인 살풀이 춤의 경우 여성인 김숙자와 남성인 이매방이 동시에 보유자로 지정된 점 등을 반박 근거로 제시했다.

인권위는 “동래한량춤의 전형을 유지, 전승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이수자 선정 과정에서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판단할 수 있다”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기준과 절차를 적용하지 않고 전수 장학생 선정 과정에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