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무기한 개학 연기’ 강행 통보에 지역 맘카페 회원들이 분노하고 있다. 유치원 개학 직전 아무런 대책 없이 연기 결정만 공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일부는 ‘유아교육 정상화’라는 한유총의 입장과 모순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한유총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립유치원 개학 연기를 공식화한 3일 서울·경기·강원·경북·대구·부산 지역 맘카페 9곳에 접속해봤다. 카페 글 대부분은 한유총의 결정에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회원들은 한유총과 교육당국의 줄다리기에 아이들의 피해만 커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의 경우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어 고충이 크다고 했다.
사립유치원의 일 처리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는 학부모도 많았다. ‘개학 연기’라는 중대한 공지 사항을 불과 하루 이틀 전에야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경기도 지역의 한 맘카페 회원은 “2월 28일까지만 해도 유치원비 관련해 전화를 받았는데 다음 날인 3월 1일 저녁에 개학 연기 소식을 문자로 들었다”며 “3·1절에 문자 보내고 연락 안 받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의 모 사립유치원 학부모도 “(아이를 보내던) 유치원이 폐원해서 옮겼는데 개학 연기라니, 애들이 무슨 죄냐”라며 “2월 27일에 오리엔테이션도 했었다”고 2일 지역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 대구에 거주하는 다른 학부모 역시 “워킹맘이라서 늦게까지 ‘돌봄서비스’가 되는 곳으로 선택했는데 돈은 미리 받아놓고 개학 연기라니”라며 “혹시 애한테 피해가 갈까 봐 원장 선생님이 전화했을 땐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한유총의 개학 연기 결정에 동참하는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아이 유치원을 선택할 때 명단에 포함된 곳을 무조건 제외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유치원에 입학 전인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끼리도 명단을 미리 공유하는 중이다.
이들은 한유총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유아교육 정상화를 강조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대상인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내모는 게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정의 자녀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돌봄서비스마저 없었다면 개원 일시가 결정될 때까지 친척·지인 집을 전전하거나 부모가 휴가를 내야 했을 거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애타는 학부모 마음을 악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입학 시기가 지나면 유치원을 옮기는 게 까다로워진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부모가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다니던 유치원에서 퇴소하는 것을 꺼리는 학부모가 많은데,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사립유치원 측이 충분한 설명 없이 개학 연기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많은 회원이 “아이들 데리고 장사하는 것 같다” “고려 대상 1순위가 아이보단 유치원 이익이라는 것” “아이를 볼모로 삼는다” 등의 댓글을 각 지역 맘카페에 남겼다.
한유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28일 예고한 대로 유치원 개학 연기를 단행하겠다며 “폐원 투쟁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화에 응하지 않은 교육부의 ‘불통’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며 “전국 1533곳의 유치원이 개학 연기에 동참 의사를 전해왔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집계한 개학 연기 유치원 수는 한유총 측 발표와 다르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각 시·도 교육청이 조사한 결과 개학을 연기하겠다고 밝힌 유치원은 190곳, 조사에 불응하거나 응답하지 않은 곳은 296곳이었다. 정부는 개학 연기 유치원이 늘어나더라도 국·공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공동육아나눔터, 유아교육 진흥원 등을 총 동원해 긴급돌봄체계를 가동하면 ‘돌봄 공백’에 대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개학일 결정이 유치원장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준법 투쟁’이라는 한유총 입장에도 이번 사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다. 개학을 연기하는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행정처분을 내리고 감사에 들어간다. 이를 거부하는 유치원은 즉각 형사고발키로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