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거칠었던 북, 1차 때부터 달라졌다

입력 2019-03-02 04: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협상을 끝낸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 사라 샌더스 트위터 캡처

국제무대에서 ‘깡패국가’라고 불렸던 북한이 달라졌다.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거친 말부터 내뱉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일단 차분하게 입장을 밝히고 사태 수습을 위해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일 새벽(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심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은 시종일관 비교적 차분하고 정제된 표현으로 북한의 입장을 전했다. 리 외무상은 북한이 민간 경제에 영향을 주는 일부 제재만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다면서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자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는 하지 않고 제재를 전면 해제하라고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말한 것과는 배치됐다.

리 외무상은 과거 이런 상황에서 거친 언행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하던 2017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태평양에서 수소탄 시험을 하게 되지 않겠느냐”거나 “미군 전략폭격기를 격추하겠다”는 등의 말로 국제사회를 도발했다.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 짖는 소리”라고 강하게 응수했다. 최 부상도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선 비핵화 후 보상’ 방법을 언급하자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난다” “아둔한 얼뜨기”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김 위원장의 언행도 극적으로 변했다. 그는 지난 28일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자 데이비드 나카무라의 질문을 받았다. ‘정상회담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는 나카무라 기자의 질문에 김 위원장은 “속단하긴 이르다고 생각한다. 예단하진 않겠다”며 “그러나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예정에 없던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한 것은 처음이다. 협상 결렬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미국 측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접어든 후로는 거친 언행을 삼가고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화를 유도해내는 모습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지난해 5월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미국 워싱턴에 특사로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이 북·미 간 대화의 불씨를 되살리는 낯선 상황이 연출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 협상이 결렬됐지만, 북한은 이번에도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며 “두 나라 사이에 수십여 년간 지속된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 길을 오가며 이번 상봉과 회담의 성과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하여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