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베트남 공식 일정 소화, 2일 오전 열차로 출발

입력 2019-03-01 13:11 수정 2019-03-01 14:30
리용호 북한 외무상(가운데)이 1일(현지시간) 새벽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AP뉴시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서명 없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1일 새벽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나서 ‘깜짝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의 장외전에 나선 북한은 직후 특별한 움직임 없이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하노이의 멜리아 호텔 주변엔 여전히 삼엄한 경계가 이어졌다. 호텔 주변에 설치된 철제 펜스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고, 도로와 인도의 통행 제한도 이어졌다. 중무장한 경찰 병력들은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베트남을 찾은 손님인 김 위원장에 대한 최상급 예우는 계속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회담장인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로 이동하기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무리했고, 이날부터 2일까지 베트남 친선방문 공식 일정을 수행할 예정이다. 당초 김 위원장은 2일 오후 중국과 접경 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을 앞당겨 2일 오전 출발할 것으로 전해졌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결렬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한시라도 빨리 귀국, 향후 이어질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및 장외전에 대한 준비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30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 앞에서 열리는 환영식에 참석한 후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한다. 이어 응우옌쑤언푹 총리와 응우옌티낌응언 국회의장도 면담한다. 또 저녁엔 베트남 정부가 개최하는 환영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됐지만 김 위원장은 귀국 일정을 2일 오전으로 조금 앞당긴 것 외에는 변동 없이 베트남 친선방문 공식 일정은 모두 소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루트를 따라 방문, 우호 증진 분위기를 만든 대베트남 외교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별열차 편으로 귀국하는 김 위원장이 중국을 통과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비핵화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김 위원장이 북한의 ‘든든한 뒷배’를 자임하는 시 주석을 만나 향후 협상 방향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이 미국에 상응조치로 요구한 유엔 대북 제재 5건(2016~2017년 결의 통과)의 해제에 대해 중국의 측면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날 새벽 리 외무상이 기습 기자회견을 열고 2016~2017년 통과된 5건의 유엔 대북 제재 해제를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상응조치로 미국에 요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종료 직후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플러스 알파(비공개 핵시설 폐기)’라는 미국 측 주장을 분명히 했다. 양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사회 여론전에 뛰어들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협상 테이블을 벗어나 장외전으로 옮겨진 모양새다.

한편 이날 자정을 넘어 오전 12시10분쯤 리 외무상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종료 이후 이루어진 기습 기자회견에 기자들은 당황한 기색도 보였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기자도 있었고, 멜리아 호텔 인근에 숙소를 잡았던 기자들은 편한 추리닝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전력 질주했다. 빠르게 이동한 일부 매체는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한발 늦은 매체들은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멜리아 호텔 입구에서 발만 동동 굴렸다. 또 비까지 내리면서 젖은 상태로 추위에 떠는 기자도 있었다.

하노이=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