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콕 찍어 해제 요구한 ‘안보리 제재 5건’…돈줄 차단이 핵심

입력 2019-03-01 12:19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시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준비해온 발언을 읽고 있다. 리 외무상 옆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하노이=AP/뉴시스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담판이 ‘노딜’로 끝난 뒤 양측은 협상 결렬의 원인이 된 대북 제재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재의 전면적인 해제를 요구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을 내세워 제재의 전면 해제가 아닌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고 반박하면서 그 대상을 특정했다.

리 외무상은 1일 0시10분쯤(현지시간)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라며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시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준비해온 발언을 읽고 있다. 리 외무상 옆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하노이=AP/뉴시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는 총 10건이다. 이중 6건이 2016년 이후 채택됐다. 리 외무상이 5건이라고 한 건 북한 기관과 개인을 제재 리스트에 추가한 2356호(2017년 6월)를 뺀 것으로 보인다. 2006년 7월에 채택된 1695호는 실질적인 제재 내용이 없다.

북한이 2016년을 기준으로 삼은 건 이를 기점으로 제재의 성격이 달라져서다. 2016년 이전 결의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2016년에 3월에 나온 2270호는 북한이 석탄, 철, 금 등을 공급·판매·이전할 수 없도록 했고 이어 북한으로의 정유·원유 수출을 제한하는 식으로 금수 대상이 민생 관련 분야로 확대됐다. 제재 대상을 넓히면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틀어막은 것이다. 리 외무상이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우선 해제를 주장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 베트남 하노이 시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노이=AP/뉴시스

리 외무상의 심야 기자회견에 동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5가지 결의의 100%가 아니라 인민 생활과 관련한 사항들에 대해 제재 해제를 요구했을 뿐”이라며 “군수용은 아직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북·미 간 제재에 대한 인식차가 드러난다. 북한은 이를 제재의 ‘일부 해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제재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가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는 건 제재 효과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미국으로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제재 밖에 없는 만큼 막판까지 손에 쥐고 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은 유엔 결의와 각국의 독자 제재가 얽히고설켜 있어 이중 일부를 해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하노이=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