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끝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협상의 의지만 확인한 채 일정을 축소하고 회담장을 떠났다. 빅딜(big deal)도, 스몰딜(small deal)도 없는 사실상의 노딜(no deal)이다.
전조는 회담 이틀째 일정의 초반부터 나타났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오전 9시(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소피아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차례로 모두발언을 한 뒤 단독회담을 시작했다. 되짚어보면 이 때 두 정상은 ‘협상의 속도’를 놓고 미묘하게 이견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다짐하는 과정에서 “보여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협상에 속도를 내자’는 취지로 풀이됐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시간이 귀중한데…”라며 웃기도 했다. ‘예정됐던 단독회담을 빨리 시작하자’는 뜻이긴 했지만 초조한 속내를 드러낸 말이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모두발언, 단독회담, 정상 간 산책을 끝내고 오전 9시50분부터 시작한 확대정상회담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재연됐다. 미국 측 기자들이 질문을 이어가자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가 충분한 이야기를 좀더 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다”고 말했다. 가벼운 어조였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태도 차이는 두드러졌다.
돌이켜보면,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와 미국이 제시하는 ‘비핵화 의제’ 사이에서 막판까지 조율되지 않은 이견이 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확대회담에서 북한이 미국보다 배석자를 1명 줄인 것도 특이했다. 김 위원장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이 나란히 앉았다. 배석한 통역사 1명을 제외하면 3명만 회담장으로 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배석했다. 모두 4명이었다. 테이블에 앉지는 않았지만 뒷자리에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 3명의 추가 배석자도 있었다.
반면 볼턴 앞에는 북한 측 카운터파트가 없었다. 확대회담은 볼턴 보좌관의 맞은편인 북한 측 좌석을 비운 채 진행됐다. 볼턴 보좌관은 강경한 외교노선을 가진 ‘매파’로 분류된다.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강경론을 펼치는 볼턴 보좌관을 북한 측에서 패싱(passing)했을 가능성이 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리비아식 비핵화’와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을 언급해 북한의 신경을 자극했다. 북한 외무성의 ‘미국통’ 김계관 부상이 1차 회담을 한 달여 앞둔 그해 5월 16일 낸 담화에서 볼턴 보좌관을 특별히 지목해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8개월 전 확대회담에서 볼턴 보좌관의 카운터파트는 리수용 노동당 외교담당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양측은 4대 4로 배석자의 균형을 맞췄다. 북한은 이번 확대회담에서는 볼턴 보좌관의 맞은편 빈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확대회담의 다음 일정은 오전 11시55분으로 예정됐던 업무 오찬이었다. 두 정상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오찬장에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클라이맥스가 됐을지도 모를 공동합의문 서명식도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오후 4시로 예정했던 기자회견을 오후 2시로 앞당겨 사실상의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