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파가 사리를 살렸다? 경질 위기에서 ‘한숨’

입력 2019-02-28 22:00
마우리시오 사리 첼시 감독. AP뉴시스

잉글랜드 프로축구 첼시의 사령탑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이 경질 위기에서 한숨을 돌린 듯하다. 첼시는 28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2018-201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8라운드에서 2대 0으로 완승했다.

천금 같은 승리였다. 지난 25일 잉글랜드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의 항명 논란 이후 뒤숭숭했던 선수단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 4위권 추격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4위 아스널(승점 56)과의 승점 차는 단 3. 첼시가 한 경기 덜 치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추격 사정권에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첼시 선수단의 태업 및 항명 의혹은 지난 번 케파의 교체지시 거부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그라운드에서 명백한 월권이 발생하는 장면을 관중석에 앉아있던 수많은 팬과 시청자들이 눈으로 지켜봤다. 논란이 식지 않자 첼시는 구단 차원에서 케파에게 1주일 주급 정지란 징계를 내렸고, 케파 역시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첼시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가 25일 잉글랜드 카라바오컵 결승전에서 교체 지시를 거부한 후 다비드 루이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사리 감독도 상황이 반전됐다. 사리 감독의 최근 행보는 외줄타기와 같았다. 라커룸 장악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조르지뉴 고집 등 전술 대처의 답답함까지 겹쳐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현지 매체들은 지네딘 지단과 지안프랑코 졸라 수석코치 등 차기 감독 후보군까지 보도했다. 언제 경질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 매체들은 사리 감독의 경질 시점을 카라바오컵으로 전망했다. 우승컵을 놓치게 되면 곧바로 경질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첼시는 우승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지만 상황이 반전됐다. 결승전 패배의 책임은 모두 케파가 떠안게 됐다. 감독의 권위가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팬은 사리 감독에게 진심 어린 동정과 응원을 보냈다.

실제로 당시 첼시의 경기력은 아주 훌륭했다. 사리 감독과 함께 끊임 없이 비판받았다 조르지뉴는 경기 초반 압박에 고전하긴 했으나 이내 흐름을 되찾았다. 팀의 중심이 돼 원활히 볼 배급을 하는 엔진 역할을 다해냈다.

사리 감독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맨시티를 꺾기 위해 후방 빌드업과 짧은 패스 중심의 간결한 공격 전개라는 자신의 철학을 버리면서까지 신중하게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룰렛과 같은 승부차기에서 꺾였을 뿐, 사리 감독의 전술적 패배는 아니었다. 맨시티도 끈끈한 수비조직력을 보인 첼시의 반격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기가 끝난 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감독 경력상 가장 힘들었던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런던 라이벌이었던 토트넘까지 꺾은 이상 사리 감독의 임기는 최소 이번 시즌까지는 보장될 가능성이 크다. 사리 감독이 직접 영입한 조르지뉴와 곤잘로 이과인을 비롯해 다비드 루이즈와 안토니오 뤼디거 등 많은 선수가 아직 사리 감독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리 감독까지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난다면 어떤 명장도 첼시를 택하지 않을 터.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선수 영입 금지 징계를 받은 만큼 원하는 지도자를 선임하기도 어렵다. 구단 수뇌부로서도 섣불리 사리를 경질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케파의 항명이 첼시에서 사리 감독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