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8일 오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시간이 귀중한데”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북핵 문제 해결의) 속도보다 올바른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터라 북·미 양측이 협상 속도에 이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맥락을 따져보면 이는 오해에 가깝다. 김 위원장의 말은 협상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 ‘예정된 단독회담을 빨리 시작하자’는 취지에 가까웠다. 발언에는 웃음기도 절반쯤 섞여 있었다.
양 정상은 이날 오전 8시56분(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오전 10시56분)쯤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 집결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둘째 날 첫 일정인 1대1 단독회담을 위해서였다. 본격적인 회담에 돌입하기 전 양측은 10여분간 취재진과 만나 간단히 소회를 밝혔다. 영어 인터뷰였기 때문에 답변은 주로 트럼프 대통령이 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저는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며 “북한의 미래에 밝은 날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답변을 이어가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 쪽을 보며 더 할 말이 없는지 물었다.
김 위원장은 답변 대신 취재진을 향해 “우리는 시간이 귀중한데, 우리한테 편안한 시간을 주시면 우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을 손짓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모두발언 동안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대체로 초조한 표정이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이 같은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직 담판 지을 의제가 많은 상황이니 본격적인 회담을 속히 시작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말을 통역에게 전해 들은 뒤 바로 “Thank you, Thank you(감사합니다)”라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려 했다. 곧 취재진 사이에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제야 트럼프 대통령은 “No rush, No rush(서두를 것 없다)”라며 북핵 문제 합의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통역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무슨 뜻인지 물었고 미국 측 통역사가 “급할 것 없고, 옳은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대신 말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양 정상은 45분간 예정됐던 단독회담을 10분 정도 일찍 마무리한 뒤 장소를 옮겨 실무자가 배석하는 확대회담에 들어갔다. 130분간 이어질 확대회담은 오전 9시44분부터 시작됐다. 미국 측 인사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고 북측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이 나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영상 편집=최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