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역사적 만남을 가졌다. 양국은 118년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이곳을 회담 장소로 선정한 듯 보인다. 식민지배·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역사적 기념물인 이 호텔이 이번 회담 이후 평화의 상징으로 재탄생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1901년 개관한 5성급 메트로폴 호텔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동부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아르누보 건축물인 이 호텔은 총 7층 규모에 객실 364개와 수영장·골프코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작은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피트니스 센터도 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2개에는 개인용 사우나가 설치돼있다.
호텔 외관은 ‘19세기 말 퇴폐적인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책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휴양지 1001’는 메트로폴 호텔을 “심플하면서도 세월의 흐름을 잊은 우아함이 있다. 객실은 하나하나 개성적으로 꾸며졌지만 단단한 나무바닥, 아시아 러그, 러시아풍의 꽃무늬 벽지, 수많은 예술작품과 앤티크는 모두 공통이다. 위층에서 본 모스크바 풍경은 숨막히게 아름답다”고 소개하고 있다.
식민지 시절 지어져 잔혹한 전쟁을 오랜 기간 겪은 만큼 이 호텔 곳곳에는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2011년 호텔 안쪽 바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지하벙커가 발견됐다. 미국의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 당시 만들어진 공간으로 추측된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내부수리를 거쳐 현재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공개하고 있다.
베트남을 찾은 유명인은 이 호텔에 꼭 한 번 묵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36년 배우 찰리 채플린이 신혼여행지로 이곳을 낙점한 후 유명세를 떨쳤다. 베트남을 방문한 각국 정상은 꼭 한 번씩 이곳을 거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2017년 APEC 정상회의 때 하노이를 방문하며 이곳을 찾았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도 여기 묵었다.
메트로폴 호텔을 찾은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미국 배우이자 반전활동가 제인 폰다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72년 이 호텔에 2주간 머물렀다. 당시 그가 월맹군과 함께 대공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후 ‘하노이 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곳은 전설적인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데도 일조했다. 세계적인 가수이자 인권운동가인 존 바에즈는 1972년 이 호텔에서 녹음작업을 했다. 이 때 미국이 대대적인 폭격을 퍼부었다. 그가 이듬해 발표한 ‘내 아들 지금 어디에 있니’라는 곡에는 당시 폭격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밖에도 영국 대문호 그레이엄 그린은 1951년 이 호텔에서 ‘조용한 미국인’을 집필했고, 영국 작가 서머밋 몸이 소설 ‘젠틀맨 인 더 팔러’를 쓴 장소도 이곳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