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렵했던 소년’ 지금은… 김정은, 역변의 20년

입력 2019-02-27 15:48 수정 2019-02-27 18:0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6일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한 평양발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스위스 유학생 시절 김 위원장. 뉴시스, 마이니치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초고도비만의 체형을 가졌다.

키는 170㎝ 이하로 가늠된다. 남북 정상회담 때 나란히 선 문재인 대통령(172㎝)보다 조금 작았다. 국가정보원이 2016년 파악해 국회 정보위원회로 보고한 김 위원장의 체중은 130㎏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의 체질량지수(BMI)는 44.9 이상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3단계(BMI 40.0 이상)의 비만, 즉 초고도비만에 해당한다.

김 위원장의 과거는 달랐다. 청소년 시절만 해도 날씬했다. 북한에서 권력을 세습할 ‘후계자’로 처음 지목된 2009년 9월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공개된 16세 스위스 유학생 시절 김 위원장의 사진을 보면 얼굴은 갸름했고 목과 턱의 윤곽이 뚜렷했다. 군살도 없었다. 1984년생인 김 위원장의 현재 나이는 만 35세, 한국식 나이로 36세다.

하지만 2010년 9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함께 공식석상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체형은 달랐다. 얼굴에 살이 붙어 턱살까지 생겼다. 청소년기와 달랐다. 비만의 체형을 지도자의 풍채로 여기는 북한 정서상 비대한 몸집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지도력을 높이기 위해 조부 김일성 전 주석과 같은 체형을 만들었다는 관측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정상이 나란히 선 산책에서 문 대통령보다 2㎝가량 작은 김 위원장의 키를 가늠할 수 있다. 국민일보 DB

김정일 전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그해 10월 도쿄 메이지대 강연회에서 “김정은이 어렸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 부친으로부터 ‘많이 먹고 관록을 붙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부친이 사망했던 2011년 12월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돼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체중은 90㎏ 안팎으로 추정됐다. 지금과 같은 초고도비만 수준은 아니었다. 조부나 부친의 생전 체형과 비교하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2012년 6월 6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소년단 창립 66주년 연합단체대회를 보도한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김 위원장은 지금보다 살이 덜 붙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김 위원장의 몸집은 5년 전부터 비대해졌다. 이 탓에 건강 이상설도 불거졌다. 대북 인터넷매체 자유북한방송은 2014년 5월 평양 봉화산 진료소 안팎의 소문을 종합해 “김 위원장이 불안증세로 폭식하고 우울증으로 안면마비를 앓았다. 체중이 120㎏까지 늘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14년 10월 14일자 1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성과학자주택지구 현지지도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40여일 만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노동신문

김 위원장은 그해 10월을 전후로 한 달 넘게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했다. 건강 이상설이 사망설, 쿠데타설로 확산됐던 시기다. 모두 사실무근이었다. 다만 뒤늦게 등장한 김 위원장은 지팡이를 짚었다. 국정원은 발목 낭종 수술을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국정원이 2016년 7월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김 위원장의 체중은 130㎏이었다. 국정원은 당시 “김 위원장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폭음·폭식으로 성인병 발생 가능성이 높다. 2012년까지 90㎏이었던 체중이 이제 130㎏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김 위원장의 체형은 그 이후로 큰 폭의 변화가 없었다. 말할 때 호흡이 탁하고, 걸을 때 절뚝거리고, 앉을 때 손으로 무릎을 짚어 상반신을 지탱하는 김 위원장의 불안정한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낭독한 ‘판문점 선언’이 길어지자 거친 호흡을 몰아쉬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처음 만나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는 지난해 9월 20일 남북 정상 내외의 백두산 천지 등반 과정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차량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은 산책만으로 가파르게 숨을 내쉬며 문 대통령에게 “숨 차 안 하십니까(숨이 차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네, 이 정도는 뭐…”라고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는 “얄미우십니다”라고 농담으로 받아치며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때 다소 굳어 있는 김 위원장의 표정이 문 대통령과 동행한 한국 측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발 특별열차를 타고 지난 26일 베트남 당동역에서 내린 김 위원장의 체형은 6년째 그대로였다. 다만 문 대통령과 평양에서 만났던 5개월 전보다 한결 넉넉해진 인민복, 붓기가 빠진 얼굴을 보면 소폭의 신체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