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기색 없이 66시간 내달린 김정은의 ‘열차 행군’

입력 2019-02-26 11:46 수정 2019-02-26 12:1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전(한국시간) 베트남 접경지대 동당역에 도착했다. 지난 23일 오후 4시30분쯤 평양 출발 후 무려 66시간의 ‘열차 행군’을 감행한 것이다.


◇최단 코스로 내달린 김정은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사흘 동안 중국 대륙을 동북에서 남서 방향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23일 저녁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역에 모습을 드러낸 열차는 베이징으로 향하지 않고 24일 오후 톈진을 통과해 남하하는 루트를 택했다. 이후 우한과 창사, 헝양, 구이린을 거치며 중국 내륙을 비스듬히 종단했다. 이 노선은 광저우를 거치지 않고 중국과 베트남 접경으로 향하는 최단경로다. 김 위원장은 이후 26일 새벽 접경지대인 난닝과 핑샹을 거쳐 국경을 통과한 뒤 26일 오전 10시22분쯤 베트남의 관문인 동당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렸다.

평양에서 베트남 동당역까지 특별열차가 내달린 시간은 약 66시간, 총 거리는 약 4500㎞에 달한다. 중국 내륙을 관통하는 와중에 필요한 정비 시간, 중국·베트남 국경 통과시간 등을 감안하면 열차는 시속 60㎞~70㎞대 속도로 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특별열차가 이날 오후 1시10분쯤 후난성 창사역에 도착해 30여분간 정차했으며, 기관차 정비를 하는 것 같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특별열차는 중국·베트남 접경지대인 핑샹역에서 약 1시간30분을 머무른 뒤 국경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움직이는 특급호텔’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움직이는 특급호텔’이자 ‘사령부’다. 김 위원장이 사흘밤을 열차에서 보내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호텔급 시설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무실과 침실, 식당이 별도로 있고, 전용차량 주차공간도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방중 당시 북한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 안에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영상에 등장한 열차는 내부가 고급 카펫과 분홍색 가죽 소파로 꾸며져 있고, 벽면은 연노란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특별제작된 열차 덕분에 김 위원장은 ‘4500㎞ 대장정’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오전 동당역에 도착한 뒤 특별열차에서 내려 중국 측 인사들과 악수하는 김 위원장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고 3박 4일의 열차 이동을 택한 배경에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있다. 각종 통신·보안시설, 편의시설을 갖춘 특별열차 내부에서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사찰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미국과의 막판 비핵화 협상을 진두지휘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춘제 연휴에도 철도 전면 통제 배려

김 위원장의 ‘3박 4일’ 열차 이동은 중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 측은 철저한 경호와 안전보장을 북측에 약속하면서 김 위원장이 최단거리로 내륙을 통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은 중국의 최대 연휴인 ‘춘제’ 연휴 기간에 열린다. 수억명이 대이동하는 기간임에도 중국 정부는 특별열차가 지나는 구간의 철로를 전면 통제하면서 김 위원장의 이동을 지원한 것이다. 특별열차가 통과한 내륙 도시에서는 중국 철도당국 관계자들과 공산당 간부들이 선로를 점검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주변 호텔 숙박도 제한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66시간 계속된 ‘열차 행군’을 통해 중국과 베트남 내륙지방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향후 북한과 중국이 철도를 매개로 더욱 끈끈한 혈맹관계를 과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