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진행 과정에서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보다 파격적이고 과감한 행보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파격’을 주도하는 건 김 위원장이다. ‘기행(奇行)’으로 남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눌리지 않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되려는 모습이 강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국제 사회의 주목을 통해 대북제재 등 현재 처한 국면을 타개하려는 포석이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김 위원장은 26일 오전 10시 22분(한국시간) 베트남 북부 동당 역에 도착하는 모습을 전 세계 언론에 공개했다.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에서 내려 전용차량으로 갈아탄 뒤 회담이 예정된 하노이로 향했다. 도착 모습을 세계 언론에 공개한 것 자체가 북한 측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이 동당 역에 내려 승용차에 오르기 전까지 베트남과 외신들이 김 위원장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북측 경호원들도 기자들을 강하게 제지하지 않았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의전에 특별한 신경을 쓰는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한 파격을 감행한 셈이다. ‘정상 국가’임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하노이 출정’에는 다중(多重)의 포석이 깔려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 위원장은 네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 대신 3박 4일 65시간의 철도행을 택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다음 달에 베트남을 출발한다면 집권 이후 최장 기간 북한을 떠나 있게 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6일 “김 위원장의 ‘장기 외출’은 북한의 통치 상황이 매우 안정적이고 자신이 보통의 지도자라는 점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강하다”며 “외부 우려와는 다르게 북한 체제가 공고하게 유지돼 있으며 (외부를 향해) ‘한 번 봐보라’고 유도하는 심리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숙소 선택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미국 백악관 기자단의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하노이 멜리아 호텔을 숙소로 선택했다. 이에 북측 경호원의 보안을 받는 김 위원장과 미 기자단이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다만 보안 등의 문제가 불거졌고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에 “미 기자단의 프레스센터가 하노이 국제미디어센터(IMC)로 옮겨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엔 외신과 접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콘셉트로 잡은 이유는 뭘까.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이 국제 사회의 이목을 김 위원장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은 현재 맞닥뜨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교수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전체적인 과정을 김 위원장 자신이 끌고 가겠다는 차원에서 개혁·개방 의지가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며 “국제 사회와 언론의 시선을 김 위원장 쪽으로 붙들어 매고 이번 하노이 회담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부각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수행단에는 지난해 1차 정상회담 때 참여한 외교안보 라인 외에도 경제 분야 등을 담당하는 오수용·김평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추가됐다. 대북제재 완화와 더불어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벤치마킹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북한이 베트남식 경제모델을 채택할지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베트남 산업단지 방문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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