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이 만나는 베트남은 오랜 세월 미국의 경제제재로 고통을 받았다. 2017년 경제제재가 완전히 해제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햇수로만 31년이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80년 278억4000만 달러 수준이었던 베트남의 명목 GDP는 2017년 2204억 달러로 약 8배 증가했다. 지난 23일 하노이행 특별열차에 오르며 김정은이 그린 그림일 듯하다.
25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비핵화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해제’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1986년부터 내부적으로 시장개혁·개방(도이모이) 정책을 진행했다. 대외적으론 미국 등 서방 세계와의 관계 정상화에도 나섰다.
베트남이 개방에 나선 데는 경제제재로 오랜 세월을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대(對)베트남 무역제재의 역사는 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한국전쟁 발발로 ‘무역협정연장법’을 제정했고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대한 최혜국 지위를 중지했다. 이때 북베트남도 포함됐다.
이후 해당 조치의 근거 법규는 74년 ‘무역법(Trade Act of 1974)’의 ‘잭슨·바닉 수정조항’으로 대체됐다. 이 수정조항은 “이민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비시장경제국가”에 대해서는 최혜국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3가지 기준에 따라 진행했다. 무역제재와 대(對)베트남 원조 제한, 고립화 정책 등이다.
무역제재는 수단에 따라 베트남과의 전면적인 수출입을 금지하는 무역금수조치, 수출입할 때 허가를 받도록 하는 허가제 방식을 택했다.
국제사회의 베트남 원조도 제한했다. 베트남은 전후 경제재건과 계획경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대외원조를 필요로 했지만 미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외부자원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이 국제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조건을 높였다. 1970년대 베트남이 유엔에 가입을 시도했을 때 미국은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했고 2000년대 들어선 베트남의 WTO 가입 협상에서 태클을 걸었다.
이 같은 조치로 베트남은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베트남은 시장개혁·개방(도이모이) 정책을 시작했다.
경제를 정상화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이모이 정책은 86년부터 시작해 2017년 완료됐다. 서방세계와의 정상화는 80년부터 시작됐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제재 해제를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효과가 약하고 해제가 쉬운 것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제재 효과가 크고 해제하기 어려운 순이었다. 제재 해제 초기인 91년엔 베트남 외교관 여행규제 완화, 미국인 베트남 관광규제 완화 등 베트남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작은 것부터 진행했다. 93년엔 국제금융기구의 대베트남 원조 허용, 그 이후에는 무역 관련 제재 완화였다.
보고서는 순차적으로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베트남 경제지표는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전했다. 연평균 6.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베트남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1980년 278억4000만달러에서 2017년 2204억달러로 약 8배 늘었다. 1인당 명목 GDP도 같은 시기 514달러에서 2354달러로 5배나 증가했다.
베트남이 대미 우회 수출기지로 급부상하면서 유입된 해외직접투자(FDI)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1990년 1억2000만달러에서 2016년 158억달러로 132배 증가했다. 이 기간의 누적 FDI 유입액은 총 1546억달러에 이른다.
대외개발원조(ODA)도 1991년 2억3000만달러이던 것이 평화협정 체결 후인 1992년 5억7000만달러로 늘었고 2016년엔 28억9000만달러로 23배가량 증가했다.
무역부문에서도 94년 수출 40억5000만달러, 수입 58억2000만달러에서 2016년 수출 1765억8000만달러, 수입 1748억달러로 증가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역할이 컸다. 베트남의 총수출에서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무역협정 체결 전에는 5% 이하였으나 체결 이후 베트남이 대미 우회수출 기지로 부상하면서 20%로 크게 늘었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426억8000만달러(2017년)로 금수조처가 해제된 1994년과 비교했을 때 450배 증가했다.
KIEP은 “베트남의 지난 20~30년 GDP 추이를 살펴보면 미국과 대외관계를 개선하며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