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밤 JTBC ‘썰전’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입니다. 이 의원은 최근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의 ‘방송보도 지침’과 관련해 이 자료를 근거로 여가부의 안내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뿐만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외신기자로부터 성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린 이 보고서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과연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은 성평등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WEF는 매년 경제참여도(노동력인구 비율, 동일노동대비 임금비율, 전문인력 비율 등), 교육 성과, 보건, 정치참여 등 4개 부문에 걸쳐 성 격차 지수(GGI)를 산출합니다. GGI는 간단히 말하면 남성을 1로 뒀을 때 여성이 어느 수준을 누리고 있느냐를 표시한 수치입니다. 2018년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18일 발표됐습니다.
한국의 경제참여 부문 지수는 0.549(124위)였고, 교육성과 부문 0.973(100위), 보건 부문 0.973(87위), 정치 참여 부문 0.134(92위)였습니다.
전체 순위는 4개 부문 지수를 단순 합산해 평균을 구한 뒤 이를 다시 순서대로 나열하는 식입니다. 한국의 전체 평균은 (0.549+0.973+0.973+0.134)÷4=0.65725입니다. WEF는 소수점 아래 3번째 자리까지 표기하고 한국은 전체 149개국 중 115위라고 적었습니다.
한국의 성 격차는 르완다(5위)나 라오스(26위) 우간다(43위) 케냐(76위) 세네갈(94위) 인도(108위) 등보다 훨씬 못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GGI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우선 교육성과 부문에서 한국 남성들의 군대 휴학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즉 한국 남성들은 병역의무로 재학기한이 길어지는데 이로 인해 여성 대학재학 등록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지수 산출에 왜곡이 발생합니다. 교육성과 부문은 전 세계적으로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작은 점수로도 변동이 있습니다. 어쩐지 ‘여성이라서 남성들이 받는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인데 어떻게 한국이 100등 밖에 못하는지 이상했습니다. 물론 군 휴학을 고려해도 이 수치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긴 합니다.
둘째, GGI는 각 나라끼리의 수준을 비교하지 않고 한 나라 안에서의 성 격차만 비교합니다. 남성 99%가 초등학교에 가고 여성 98%가 초등학교에 가는 A국과 남성 20%가 초등학교에 가고 여성 21%가 초등학교에 가는 B국이 있다고 칩시다. 통상 B국 여성의 상황이 A국 여성의 상황보다 결코 낫다고 볼 수 없겠지만 GGI는 그 반대의 결과를 제시합니다.
셋째, GGI는 나라별 문화를 지수에 반영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 할례나 여성혐오가 만연된 국가들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여성 할례를 보시죠.
정확한 명칭은 ‘여성 성기 절제술(FGM·Female Genital Mutilation)’입니다. 우간다와 케냐와 같은 아프리카와 중동은 물론 인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을 중심으로 수천 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여성 할례는 여성의 성욕을 억제하고 임신 가능성을 키운다며 내려온 악습으로 여성 인권 차별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시술은 끔찍합니다. 여성 생식기의 전체 혹은 일부를 제거하거나 좁은 구멍만 남긴 채 봉합합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더러운 흙바닥 등에서 행해지는데 특히 여러 번 쓴 면도칼, 바늘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술을 받은 아이들이 합병증이나 출혈로 숨지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1. 아프리카 우간다 출신 30대 후반 여성 A씨는 지난 1일 딸에게 할례를 시도한 혐의로 영국 런던 중앙형사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2017년 당시 세 살 난 딸의 외음부를 칼로 절개하다 딸이 피를 많이 흘리자 급히 병원을 찾았다가 덜미를 잡혔다. A씨는 딸이 주방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주장했지만 A씨의 딸은 경찰에서 ‘마녀’가 자신의 몸을 칼로 베었다고 진술했다.
#2. 인도 온라인미디어 스쿱후프는 인도 케랄라 주 코지코드시에서 어린 소녀가 할례를 받는 순간 끔찍한 고통과 공포심에 비명을 내지르는 사진을 공개했다. 매체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도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여성 할례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3. 싱가포르에서도 여성 할례가 암암리에 행해진다. 영국 BBC 뉴스는 2016년 11월 싱가포르에 사는 자리파 아뉴아(당시 23)씨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할례뿐만 아닙니다. 인도는 극심한 여성 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달 21일 보도한 ‘찬양하거나, 혹은 혐오하거나… 인도와 여성’ 기사를 함께 보시죠.
#4. 여성 혐오가 극심한 인도에서는 ‘페미사이드(Female+Homicide)’라는 말까지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는 여성 혐오 살인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마네카 간디 인도 여성·아동발달부 장관은 2005년 “매일 2000명의 여아가 자궁 속에서 살해된다”면서 “일부는 태어나자마자 베개에 눌려 질식사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여성 차별은 심각합니다. BBC 방송은 올 초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인도 북부 카사라고드에서부터 티루바난타푸람까지 길게 늘어서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은 여성들도 힌두사원에 출입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는데, 사원은 생리가 가능한 가임기 여성을 ‘깨끗하지 못하다’며 출입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르완다도 비슷합니다. 내전으로 전쟁터에 나간 남성 사망자가 급증해 여성들의 정치·경제 참여가 늘어난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현실은 이렇지만 WEF의 GGI상으로는 한국의 성 격차가 르완다나 인도, 우간다 등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입니다.
자, 이제 이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믿고 ‘한국은 세계 최악 수준의 성 불평등 국가’라고 하기엔 부적절해 보입니다. 여성가족부나 여당 정치인이 이 보고서를 근거로 주장을 펼수록 남성 네티즌들의 불만은 커질 뿐입니다.
“그럼 남자가 죽어야 여자가 행복하단 겁니까?(르완다 5위를 빗대)”
“민주당엔 인재가 저리 없나. 저걸 근거로 여가부를 이해해야 한다니.”
“엉터리 보고서로 엉터리 주장이나 정책 펴는 정부 여당, 쯧쯧”
이런 식으로 말이죠.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