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돼 조용해진 시상식에서 전 사이클 국가대표 이민혜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이민혜는 자전거 위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활짝 웃고 있었다. 두 다리가 부어오르는 급성백혈병을 앓을 때에도 그의 순박한 웃음은 그대로였다. 한국 사이클을 대표한 여제 이민혜를 기리는 짧은 영상이 끝난 후, 동료 스포츠인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민혜가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2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이민혜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 개인추발·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도로독주 금메달을 비롯해 3번의 아시안게임에서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이민혜를 대신해 어머니 최강희씨와 언니 이혜진씨가 수상자로 나섰다. 시상대에 오른 최씨는 하얀 북극곰 인형과 꽃다발, 상패를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죽였다.
언니 이씨는 마지막까지 사이클에 애정을 가졌던 동생을 기억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 20여년간 자전거를 탄 이민혜는 병상 위에서도 사이클을 꿈꿨다. 항암제를 먹는 와중에 병이 나으면 대회에 나가겠다며 후원사를 통해 자전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창 투병 중이던 2017년 12월 이민혜는 SNS에 유니폼을 입은 사진과 함께 “지금은 치료과정이라 자전거를 탈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굴리는 날을 기대하며, 희망을 갖는다!”고 적었다. 이씨는 “민혜는 그 누구보다 사이클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고 말했다.
사이클에 대한 강한 의지 덕분일까, 이민혜는 의연하게 병을 견뎠다. 예상치 못한 백혈병 진단에도 그는 “몸이 힘들었던 이유를 알았다”며 “치료에 전념해 나으면 다시 달릴 수 있다”고 했다. 담당 의사로부터 수차례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민혜는 인내심을 갖고 이겨냈다. 의사는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몸과 마음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라 했다. 이씨는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민혜는 힘겨운 치료를 끝까지 버텼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소감을 남기다 목이 잠겨 몇 번이고 말을 끊었다. 이씨는 가까스로 “비록 민혜는 하늘로 레이스를 떠났지만, 꽃길을 깔아주고 배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받은 상패는 동생 옆에 잘 놓아두겠다고도 했다. 곁에 서 있는 최씨는 손수건으로 조용히 눈물만 훔쳤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