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미안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동 돌봄비용 축소로…‘예산 늘려야’

입력 2019-02-23 22:00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등 돌봄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추경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뉴시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웃지 못하는 이들 중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올해 임금 인상분만큼 예산이 오르지 않아 경영난이 예상된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비까지 깎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면서 예산 미비의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가게 될 형국이다.
22일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등에 따르면 센터에 지원되는 국가보조금은 인건비, 운영비 구분없이 ‘기본운영비’로만 지급된다. 2019년 지원예산은 전년도 대비 2.5% 인상됐다. 반면 최저임금은 10.9% 올랐다. 협의회는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비가 기본운영비의 10%를 차지하는데 이를 5%로 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보조금 1225억7200만원 중 80.8%(990억2200만원)가 인건비로 쓰였고 아동을 위한 문화, 예술, 교육 등에 드는 프로그램비는 122억5800만원(10.0%)이었다. 올해는 그보다 적은 63억원이 프로그램비로 쓰일 전망이다.
현장에선 후원금으로 모자란 프로그램비를 충당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갈수록 후원 분위기가 얼어붙고 있고, 전체 후원은 한정돼있는데 센터들의 후원 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후원자의 인식의 문제도 있다. 경남 창원 도담울지역아동센터 한연하(59·여) 센터장은 “최소한 인건비 정도는 나라에서 맞춰줘야지 후원금으로 직원 월급 맞춰준다고 하면 후원자 입장에서도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이 인상되는 사회복지사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김미자 경기도 성남의 한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는 “임금이 오르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비를 깎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지금보다 더 프로그램비를 줄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화·체육활동은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센터들은 특별활동 등 프로그램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시의회장은 “전체적으로 다들 하고 있던 프로그램 수를 줄이자는 분위기”라며 “우리만 해도 전래놀이랑 치어리딩을 했는데 둘 중 하나는 그만두려고 한다. 프로그램 1개당 한 달에 2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전체 국가보조금 중 프로그램비로 쓸 수 있는 비용은 24만~25만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상주하는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고용하는 프로그램 강사의 인건비도 함께 오른다.
서울 영등포구의 쪼물왕국지역아동센터에는 사회복지사 등 아이돌봄 종사자가 3명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체적으로 인건비가 약 60만원 늘었다. 반면 아동 33명을 위한 한달 프로그램비는 33만5000원으로 전년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인숙 센터장은 “이 비용으로는 방학 때 아이들 데리고 만화영화 보러 영화관 가던 활동도 못하게 생겼다”며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욕구가 많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책만 읽거나 문제집만 풀고 있거나 공부방처럼 사회복지사가 앉아서 수건돌리기, 윷놀이하고 놀아줘야 하는데 그러면 또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지역아동센터 지도점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경북 경주의 미래지역아동센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도 지난해에 비해 프로그램비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월 25만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에는 피아노치기, 역사 이야기 배우기, 종이접기, 독서논술, 보드게임, 1박2일 방학 캠프, 텃밭체험, 어촌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최악의 변화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받는 아동 수를 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사회복지사 수를 줄이면 그만큼 센터가 보호할 수 있는 아동 수도 감소한다. 아동센터들은 돌봄 아동을 줄이는 일만큼은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성희 한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팀장은 “아무리 센터 경영이 어려워져도 아동 수를 줄이고 선생님 고용을 줄이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미래지역아동센터 이신영 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에는 아이들이 사교육을 하는 대신 오는 건데 그걸 줄인다는 건 부모에게도 꺼내지 못할 말”이라며 “어렵지만 후원금을 최대한 많이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 프로그램을 줄이거나 아동 수를 줄이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