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가 없으면 부결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본회의 진행에 나선 지방의회 의장의 사소한 말실수가 우여곡절을 거쳐고 본회의에 상정된 군의회 의정비를 끝내 동결시켰다.
20%가 넘는 인상폭이 지나치게 높다는 시민단체 등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상임위 통과를 강행하는 등 의정비를 올리려고 했지만 표결 결과를 발표한 의장의 실언(?)이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셀프 인상’을 통해 과도한 의정비 인상을 추진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전북 완주군의회 얘기다.
완주군의회는 22일 본회의에서 의정비를 18.65% 인상하는 ‘수정안’에 대한 의원들의 투표를 실시했다.
당초 인상률이 너무 높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해선지 의정비를 21.15% 올리려던 당초 상임위 통과안에서 한걸음 물러난 ‘수정안’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기 위한 투표였다.
수정안은 찬성 5표, 반대 5표, 기권 1표로 투표 결과가 팽팽했다. 하지만 찬반동수일 경우 ‘부결’된 것으로 본다는 지방자치법 제64조 2항의 규정에 따라 부결 선언이 불가피했다.
직후 최등원 의장은 부결을 선포한다며 “원안에 대한 이의가 없느냐”고 엉뚱하게 물었고 이의가 없다는 의원들의 답변에 “이의가 없으므로 (원안이) 부결됐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다.
수정안 부결을 선포해야 하는 데 그만 원안 부결까지 의회 본회의에서 선포하고 만 것이다.
지방의회 관계자는 “현행 지방자치법은 상임위를 통과한 원안에 대한 수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원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다시 거치거나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수정안 투표 부결에 이어 의장이 원안 부결까지 선포해 결국 의정비 인상은 없던 것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말해 최 의장이 “수정안에 이의가 없느냐”고 물어야 할 때는 “원안에 이의가 없느냐”고 잘못된 질문을 던졌고, 반대로 수정안이 부결됐다고 선포한다는 게 문맥상 (원안이) 부결됐다“고 선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유추해석이다.
의장과 군의원들은 이 같은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본회의를 폐회했다. 현장을 지켜본 시민단체 회원들은 “현장의 분위기로만 따져볼 때 수정안이 부결된 만큼 의장이 원안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본회의를 방청한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는 이를 놓치지 않고 “의장이 분명히 ‘원안 부결’을 의회 본회의에서 선포했다"며 사무국에 회의록 구체적 확인을 요청했고 그 결과 ‘원안 부결’로 속기록에서 파악돼 일단 의정비 인상안은 우습게도 ‘없던 일’이 됐다.
이에 따라 집행부가 부결 통보를 받으면 군의원들의 의정비는 당분간 작년 수준으로 동결된다.
결국 관록을 자랑하는 최 의장이 사소한 말 실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소신을 담은 의사진행을 한 것인지에 대한 명명백백한 진실은 당분간 베일 속에 가리게 됐다. 의장 본인만이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군의원들은 다음 회기가 열리는 오는 3월 곧바로 인상안을 다시 제출할 수 있지만 의정비 인상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군의회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할 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는 “잿밥에만 눈이 먼 의정비 인상안은 황당한 의사 진행 실수로 인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며 “의회는 의정비 인상에만 몰두하지 말고 집행부 견제 등 대의기관으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임해달라”고 밝혔다.
상임위를 거쳐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의정비 인상안은 군의원 월정수당을 작년보다 21.15% 인상하는 방안이다.
인상안이 본회의에서 이날 예상대로 가결됐다면 올해 완주군 의원 월정수당은 188만7840원에서 39만9270원 많은 228만7100원으로 인상이 가능했다. 연간 의정 활동비 1320만원까지 더할 경우 완주군의회 의원들은 연간 4064만5000원의 의정비를 받을 수 있었다.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는 완주군의회가 오는 3월 다시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면 해당 조례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범시민적 인상 반대운동을 펼칠 방침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