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왜 음란물 취급을 받았나

입력 2019-02-22 17:42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살롱전은 당시 주류 미술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가장 영예로운 장이었다. 살롱전 입선은 출세하고픈 모든 화가의 로망이었다. 인상파의 거장 마네 역시 당시 유행하는 누드화를 냈지만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말았다. 아카데미 화풍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선했다. 그런데 그해 1863년 정부는 단 한 번 낙선작들을 모아 ‘낙선전’을 열어줬다. 마네의 낙선작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여기 걸렸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 식사'. 그림 속의 여성이 그림 밖의 관객을 빤히 바라봐 남성 관람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이런 여성의 시선이 당시 음란성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미술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작가인 카바넬의 누드화 ‘비너스의 탄생’은 당당히 입선했다. 같은 누드화인데 둘 중 하나는 신화 속의 숭고한 장면을 포착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살롱전에, 다른 하나는 외설스럽다는 비난을 받으며 낙선전에 걸렸다. 그 차이를 가른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미술에서 음란성을 규정하는 것일까.
법무법인 정세의 대표변호사 김영철씨가 미술에 얽힌 다양한 법적 문제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알아보는 신간 ‘법, 미술을 품다’(뮤진트리)를 냈다.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1863년). 비너스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있다.

저자는 아무리 미술이라도 딱딱할 수밖에 없는 법적인 내용을 익숙한 미술사의 사례를 들어가며 솜씨 있게 풀어간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얘기로 흥미를 유발한 뒤 음란물에 관한 전반적인 법률 규정을 톺아보고, 이어 A 작가의 ‘여고생 포르노그래피’, B 작가의 ‘우리 부부’ 등 실제로 국내에서의 일어난 구체적인 음란물 관련 소송 판례를 제시한다.

책은 주제별로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무엇이 미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술작품이라면 법에서 정하고 있는 다양한 특별면책조항에 따라 보호를 받게 되기에, 법의 관점에서 ‘미술작품’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예술과 법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 살펴보고, 3장에서는 미술규제자로서의 법을 다루면서 국가보안법, 미국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 최근 국내의 큰 이슈였던 블랙리스트 문제 등을 짚어본다. 4장에서는 미술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법인 저작권법을 소개한다.

담벼락 낙서는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놀이공원 너구리 저작권 캐릭터는 누구에게 있는지 등 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흥미를 느낄만한 정보들을 최신 사례를 통해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저자는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미술애호가를 자처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마술법 강의를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진흥재단 감사, KBS 방송자문변호사단 단장을 맡은 바 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