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맞은데, 영리하기까지 한 블랙코미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 ‘대학살의 신’(연출 김태훈)이 지난 16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극은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 교양이란 가면 안에 가려진 현대인의 민낯을 90분간 시원하게 까발린다. 제목부터 작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코미디에 ‘대학살의 신’이란 살벌한 제목이 붙은 이유는 극이 발가벗길 인간의 외피 안 이기심과 폭력성 같은 파괴적 욕망이 결국 대학살과 같은 재앙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용은 이렇다. 알랭(남경주)·아네트(최정원) 부부의 아이가 미셸(송일국)·베로니크(이지하) 부부 아이의 앞니를 싸우다 부러뜨린다. 두 아이의 부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난다. 처음은 아주 고상하고 예의 바르게 시작하지만, 점차 유치한 설전이 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육탄전을 불사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애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옛말을 극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사 하나하나에 웃음이 터진다. 한 사람에게서 어느새 다른 이의 입으로 옮겨가 있는 대사, 한 단어로 시작돼 얽히고설키는 대화들, 아주 교묘히 숨겨진 성적 묘사 등을 찾다 보면 어느새 1시간30분이 훌쩍 지나있다. 그리곤 이 연극이 토니상, 올리비에 어워즈 등 권위의 시상식에서 수상한 이유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극을 그저 부부 사이의 ‘막장 소동극’으로 정의 내리기에는 담고 있는 것들이 워낙 풍성하다. 극에서 ‘아이들의 싸움’은 두 부부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트리거’(trigger)로 작동하지만, 실은 ‘트릭’(trick)에 가깝다. 아이들은 두 부부의 파국을 이끌고는 이야기의 후면으로 빠진다. 무대에 온전히 남아 침을 튀기며 치열하게 맞붙는 4명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이다.
인물 설정부터 이채롭다. 하나같이 모순적이고, 이중적이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뛰어난 변호사 알랭은 부도덕한 제약회사의 편에서 권익을 보호하는 전형적 속물이다. 아네트는 교양 있는 체하지만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구토를 하는 모습에서 억눌린 인간형을 보여준다. 자수성가 도매상 미셸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신념으로 평화주의자와 중립을 자처한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꿰고 있는 아내 베로니크는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외치는 이상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다.
이들은 각자가 가진 성질로 인해 비극을 맞는다. 알랭은 비즈니스의 어려움과 권위를 상징하는 핸드폰이 망가져 좌절한다. 아네트는 술을 마시고서야 본색을 드러내고, 베로니크는 아끼던 책이 구토에 더럽혀지면서 폭주한다. 특히 재밌는 건 미셸인데, 결국 ‘중립’이라는 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회피할 때만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가 상대 부부에게 ‘남자아이들 간의 싸움은 당연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다'는 자기 모순적인 말을 내놓는 건 이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은 횡종연합을 거듭하며, 자신을 더 풍성하게 내보인다. 두 부부가 싸우는 얼개를 기본으로 하지만, 서사가 풀어지면서 여자 대 남자, 부부 사이에서의 대립 구도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작동하는 권력의 위계다. 등장인물들은 계속 달라지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입장이 바뀌고, 본심을 드러내며, 한층 초라해진다.
무대는 간결하고 담백하다. 작품의 수려함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단색의 프레임을 씌워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외관의 여백은 되레 배우들 개개인의 탁월함과 앙상블을 돋보이게 한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남경주 최정원 송일국 이지하 4명의 배우는 마치 아웃복서처럼 유연하게 치고 빠지며 극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그저 보면 재밌고, 뚫어져라 보면 알찬 연극이다. 한창을 웃고 있다 보면, ‘있는 체’하는 사람들에게로 슬근하게 다가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극의 모습에 뜨끔함을 느끼게 된다. 꼭 챙겨봐야 할 연극임은 틀림없다. 이상한 동질감에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든, 웃음에 눈물짓든. 공연은 다음 달 24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