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의 개발비로 화제를 모은 ‘로스트아크’는 지난해 11월 7일 오픈베타 서비스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오랜만에 국내 PC 흥행작이 탄생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하락세가 시작돼 근래까지 좀처럼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개발사인 스마일게이트알피지는 서버 확장과 꾸준한 업데이트로 떠나는 이용자의 마음을 잡아보려 하고 있지만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고질적인 문제를 답습하고 있다는 팬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현상=로스트아크는 한때 동시접속자수 35만명을 넘어서며 ‘PC게임 부활을 이끌 것’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스마일게이트알피지는 지난해 11월 로스트아크 서비스 개시 후 PC방 접속 이벤트를 여는 등 지수 끌어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이 같은 흥행몰이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로스트아크는 지난해 11월 출시 후 한때 PC방 점유율 13%대까지 치고 올라가며 ‘오버워치’를 제치고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1월 말부터 침체기에 접어든 뒤 뚜렷한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알피지는 에피소드 중심의 콘텐츠 업데이트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이용자 이탈은 계속되고 있다. 로스트아크는 12월 들어 점유율 10%대가 무너지며 낙폭을 키웠다. 결국 12월 말에는 ‘오버워치’와 ‘피파온라인4’에 뒤처진 5위까지 떨어졌다. 하락세는 신년에도 이어졌다. 1월에는 6%대로 떨어지더니 이달에는 4%대로 밀리며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에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더 로그’에서 수집한 게임 지표도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13%대까지 점유율이 오르며 3위에 안착했지만 12월 9.94%, 1월 6.34%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고, 2월 현재는 4%대를 유지 중이다. 로스트아크는 지금도 PC방 접속 보상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원인=서비스 초기 로스트아크는 MMORPG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녹여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MMORPG의 긴 역사 속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콘텐츠들이 대거 삽입됐고, 소소하게 즐길만한 서브 콘텐츠도 한 데 어우러졌다. 화려한 그래픽과 뛰어난 이벤트 연출도 흥미를 돋웠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콘텐츠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소위 잘 나가는 콘텐츠를 다수 도입했지만 ‘누더기 콘텐츠’라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게임 내 버그와 허점을 악용한 사례가 늘며 정상적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20대 이용자 A씨는 “화려한 그래픽과 국산 대작이라는 평가 때문에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밌게 했는데 딱 이 게임만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색다른 콘텐츠가 없다. 반복 작업만 하다가 금방 지루해졌다”고 털어놨다. 또 “운에 좌우되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 강화 시스템만 없을 뿐이지 못 견디겠으면 과금하라는 식이다. 요즘 모바일 게임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로스트아크는 부분유료화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출시 한 달여 만에 매출 400억원을 찍었다는 시장 평가도 나왔다. 이용자들은 로스트아크가 ‘pay to win(돈을 써야 이긴다)’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게임 콘텐츠들이 적잖게 무거운 데다가 운에 크게 좌우돼 편의성을 높여주는 유료 아이템에 심심찮게 눈이 간다고 한다.
30대 이용자 B씨는 “레이드, 생활 스킬, 항해 등 콘텐츠가 방대하면서도 너무 하드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할 게 정말 많은데, 그에 비해 얻는 보상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게임이다. 다들 최적화 하느라 창의성을 잃어가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고인물’들의 게임이 됐다. RPG게임 특유의 협동 플레이가 퇴색되고 직업 간 위화감만 심화됐다”고 덧붙였다.
여러 비판 중에서도 가장 원성이 자자한 건 직업 밸런스다. 7년의 개발 기간 동안 밸런스를 맞췄음에도 직업 편중이 매우 심하다는 냉담한 평가가 나온다. 이는 레이드 등 PvE 콘텐츠뿐 아니라 플레이어 간 전투(PvP)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접촉한 한 게임 이용자는 “캐릭터 밸런스 문제는 어느 게임에서든 나타나지만 로아(로스트아크)는 좀 심각하다. 암울하다고 말하는 직업은 게임을 아예 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3대3 경쟁전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패치로 밸런스를 조정하겠다는 희망을 주지만 막상 개선되는 것은 없었다. 안 좋았던 게 더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지난달 말 게임을 그만뒀다는 30대 이용자 C씨는 “7년 전 게임보다도 움직임이 답답하다. 캐릭터의 경직성이 크다보니 컨트롤이 직관적이지 못하다. 레이드를 하면 특유의 시원한 타격감마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C씨는 PvP 콘텐츠의 경우 특정 클래스가 아예 진입할 수 없는 수준의 밸런스라고 말했다. 그는 “PvP는 결국 판정 싸움이다보니 ‘운빨 게임’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컨트롤로 극복할 수 없는 대진이 많고, 매칭 시스템도 팀을 짤 수 없는 랜덤 방식이다. 즐거움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스마일게이트 자체 플랫폼인 ‘스토브’의 서버 병목 현상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잦은 서버 점검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버그 피드백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과=로스트아크는 한때 블리자드가 개발한 흥행작 ‘디아블로’의 대체작으로 주목받았다. 블리자드는 지난해 11월 ‘블리즈컨 2018’에서 디아블로 모바일 버전을 개발 중이라고 밝히며 넘버링 후속작을 고대한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마침 비슷한 쿼터뷰 방식으로 기대를 모았던 로스트아크가 급부상했다. 디아블로 위주로 방송을 하던 이들이 로스트아크로 옮겨가는 등 주목도가 점점 올라갔고, 해외 유명 스트리머들의 칭찬이 인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이 같이 천운을 안은 로스트아크가 급속하게 하락했다는 사실이 함의하는 바가 크다. 고질적인 MMORPG의 문제가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최근 게임 트렌드도 무시할 수 없다. 진득하게 캐릭터를 키우는 RPG 장르보다 배틀로얄이나 MOBA(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 등 단발적인 게임들이 근래 유행을 타고 있다.
로스트아크가 출시 세 달여 만에 산적한 현안들에 둘러싸였다. ‘MMORPG 쇠퇴기’란 평가가 나오는 시대에 로스트아크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까. 펄어비스가 개발한 ‘검은사막’은 최근 배틀로얄 모드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뚜렷한 방향성 설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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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