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알바트로스…죽은 새 배 속에 폐플라스틱 가득 ‘충격’

입력 2019-02-22 15:24
날개가 커서 먼 거리를 활공으로 비행할 수 있는 새 알바트로스. 북태평양 등지에서 서식하는 이 새는 몇 안 되는 장수 조류에 속한다. 인간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새’였다. 덩치 큰 몸은 식용으로 넉넉했다. 길고 속이 빈 뼈는 담뱃대로 쓰였다. 무엇보다 길고 아름다운 깃털은 여성용 모자에 화룡점정의 장식이었다. 전문적인 깃털 사냥꾼들이 남획하는 바람에 지금은 멸종위기에 있는 새다.
폐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를 찍은 'CF000478'. 성곡미술관 제공

그 새가 지금 다른 이유로 죽어 있다. 사진 속 알바트로스의 몸은 부패해 형체로 없이 사라졌다.놀랍게도 그 안에는 인간이 버린 알록달록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아직 썩지 않고 남은 깃털과 남은 부리만이 남아서 인간의 탐욕을 증거 한다. 새는 과잉소비의 결과물인 폐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56)이다.
'슈퍼마켓 종이봉투'.

‘생태주의(ecology)’가 문화계의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태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의 진전으로 인해 지구 자연이 급속도로 오염되고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 인류가 범해 온 잘못을 성찰하고 미래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일어난 일군의 생태 중심적 흐름을 의미한다. 출판계에는 지난해부터 생태주의 담론을 제기하는 신간들이 출간되는 가운데, 미술 전시장에도 이런 흐름에 호응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포문은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이 열었다. 재단법인 숲과나눔 주최로 열리는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전(5월 5일까지)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영상과 사진을 오가며 환경 문제를 특유의 시적 언어로 고발해온 미국 작가 조던(56)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국내 첫 개인전이다. 그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로 지난해 런던 세계보건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더욱 주목 받고 있는 작가다.

대학에서 로스쿨을 나와 미국 시애틀에서 10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던 조던은 마흔이 되던 2003년 예술가가 되기 위해 변호사를 때려쳤다. 배수진을 치기 위해 변호사 자격증도 반납했다고 한다.

늦깎이 작가인 그를 일약 스타로 키운 알바트로스 연작은 8년에 걸친 노작이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새 알바트로스를 찍기 위해 그는 태평양의 작은 섬 미드웨이로 갔다.
크리스 조던 작가

지난 20일 전시 개관에 찾춰 방한한 그는 국민일보와 만나 “새를 찍는 일만 4년,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는데 4년이 걸렸다”면서 “이 작업을 하면서 20만 달러(약 2억2500만원)의 엄청난 빚을 끌어다 썼다”며 웃으며 말했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알바트로스를 끔찍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찍은 작품도 있지만, 시적으로 때로는 뒤통수를 치듯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환경문제를 고발한다. 얼핏 보면 아름다운 풍경, 명화의 패러디인데 그 안에 자본주의의 폭력성, 우리의 과소비를 돌아보게 하는 장치가 숨어 있다.

이를테면 나무결이 귀족적인 겨울의 대나무 숲을 찍은 것 같은 사진인데, 이는 미국인이 매시간 110만개 버린다는 종이 봉지를 켜켜이 쌓아올려 나무처럼 보이게 찍었다. 인간이 버린 톱밥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찍은 것인데 마치 미답의 사막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다.

지구를 멀리 우주에서 찍은 것 같은 사진인데 이는 무수히 많은 신용카드로 짜깁기한 작품이다. 또 미국에서 3초 마다 배달되는 우편 주문 카탈로그로 만다라 형상을 만들고, 플라스틱컵을 쌓아서 기하학적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하나 같이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아름다움 너머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고 각성을 하게 한다. 전시를 보고 나면 비닐봉지도 빨아서 다시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일상의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비너스'. 비닐봉지를 활용해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그는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자리’ ‘우시리키아노족: 지속가능한 미래’ 등의 책을 썼고, 환경예술상으로 유명한 ‘시에라클럽 안셀 애덤스 상’ 등 다수의상을 받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편영화 ‘알바트로스’가 전시장에서 특별 상연된다. 입장료는 연령별 3000∼8000원이며 입장료 수입 전액은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에 쓰인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도 ‘생태적 감각’이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하반기에 갖는다. 이번 전시는 생태학을 삶의 기술이자 하나의 세계관으로 재정의 한 백남준의 사유에서 출발한다. 주거, 경제, 음식 등을 아우르는 지구 환경에 대해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생태적 전환을 제안하는 전시다. 서진석 관장은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의 생태적 감각은 20세기의 것과 달라져야 한다”며 “기술 환경이 생태 환경과 융합되는 시대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내외 작가 10여명의 설치·미디어 작품을 통해 풀어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