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온 게 맞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대표도 5·18유공자로 연금을 받나요?” “5·18유공자가 계속 늘어나 세금을 축내고 있는데 왜 명단을 공개하지 않나요?”
광주시가 ‘5·18 가짜뉴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진원지가 대부분 극우논객 ‘지만원’과 ‘일베’로 추정되는 5·18 가짜뉴스는 지난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 등의 ‘5·18 망언 공청회’ 이후 급증했다.
가짜뉴스를 정반대로 뒤집으면 ‘100% 진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짜뉴스로 진실을 덮거나 객관적 사실로 호도하기 위해 통계수치, 연도 등 단순한 팩트를 교묘히 섞어놓은 지능적 사례도 적잖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동안 국회 청문회와 대법원 판결,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난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 그럴싸한 가짜 뉴스로 여전히 유포되는 데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국 시·도의회 의장들이 악의적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고 역사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한국형 홀로코스트 부정처벌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려다 대구시·경북도의회 의장의 반대로 무산된 현실은 5·18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1일 대구에서 개최된 의장단 올해 첫 모임에서 광주시의회 김동찬 의장이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한국형 홀로코스트 부정처벌법 제정 촉구 건의안’은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지만 예상치 못한 두 의장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 5·18선양과는 10여일 전부터 5·18가짜뉴스를 해명하느라 10여명의 공무원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정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걸려온 문의·항의 전화는 어림잡아 1000여 통에 이른다.
단순한 문의가 아니어서 1980년 5월에 관한 구체적 자료 등을 제시하느라 전화 1통 당 최소한 30분은 소모된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과 5·18역사학회가 공동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직후 하루 평균 60~70통을 웃돌던 문의·항의전화는 요즘 30~40통 수준으로 줄어든 추세다.
가장 많은 문의·항의 전화가 걸려온 5·18 가짜뉴스 중 3대 뉴스를 집약했다. 빈도가 잦은 만큼 진실규명이 여전히 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 김옥중 5·18선양과장은 “5·18기념재단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월 단체 등에도 유사한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짜뉴스가 양산돼 그날의 진실이 가려질까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동안 접수된 전화 중에는 5·18유공자 명단에 포함된 문재인이 대통령 문재인과 동일인이냐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물론 동명이인이다. 5·18유공자 문재인씨는 광주 서구에 거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해 5·18과 연계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10년형을 선고받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광주의 고립을 깨기 위해 서울 등에서 시위를 했다가 ‘5·18유공자’가 됐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광주 현지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서울대 시위 등을 지시한 것으로 구속돼 고문을 받았다”며 “배상금을 받았지만 자유한국당 주장처럼 몰래 받지는 않았다”고 해명한바 있다.
5·18 유공자는 민주화운동 기간 ①사망 또는 행방불명자 ②부상자, ③그밖의 5·18 관련자 등 3가지로 구분된다.
보훈처 통계를 보면 이 중 3번째인 ‘그밖의 5·18 민주화운동으로 희생하신 분’에 해당되는 1급 또는 2급 판정 상이자, 구속자, 구금자, 수형자, 연행 후 훈방자 등 5·18 관련자는 1457명으로 5·18유공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여기에 포함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5·18유공자가 맞느냐”는 가짜뉴스 확인전화에 공무원들의 응대가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5·18가짜뉴스에 관한 전화는 대략 8대2의 비율로 나뉜다. 가짜뉴스를 진짜라고 믿고 항의하는 전화가 80%, 5·18 왜곡과 폄훼를 걱정하는 내용이 20%쯤 된다는 것이다.
고무적 현상은 포항과 울산 등 영남지역에서 5·18정신을 올바로 계승해야 한다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는 점이다.
보수논객 ‘지만원’을 당장 구속시켜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이밖에 5·18 당시 광주교도소 탈옥수가 유공자가 됐다거나 5·18유공자가 수억원의 보상금에 이어 거액의 연금을 받고 있다는 가짜뉴스, 주로 시민군이 휴대했던 칼빈총에 의한 시민사망 사실 등에 관한 문의도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5·18선양과 강종경 진실규명팀장은 “일베나 지만원 유튜브를 즐겨보는 이들의 전화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면 된다. 출향인사 등이 고향을 걱정하거나 5·18 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 관련 가짜뉴스 외 문의·항의 전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3대 가짜뉴스를 짚었다.
<논란이 되는 5·18 3대 가짜뉴스와 팩트체크>
1. 유공자 명단과 공적조서 보훈처가 은폐?
-국가보훈처는 현행법상 독립유공자를 제외한 5·18 유공자 등의 개인정보는 공개대상이 아니라는 입장.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2월 ‘5·18 유공자 명단, 공적 내용 공개 행정소송’에서 명단공개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 1999년 12월 완공된 광주 서구 5·18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 22m 길이의 검은색 돌판에는 5·18 관련 유공자 4296명의 명단이 새겨져.
2. 북한 특수군 개입?
-5·18이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는 주장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기밀 해제 문서 등을 통해 이미 허구라는 사실 규명돼. 5·18의 가해자격인 전두환 전 대통령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군 개입설은 처음 듣는다”고 해명. 지만원씨 등이 일련 번호를 매겨 제기한 ‘600명의 광수’는 대부분 광주시민들로 판명.
3. 5·18 유공자 공무원 싹쓸이 등 과도한 특혜?
-최소 3만명, 최대 70만명이 5·18 취업 가산점을 받는 특혜를 누렸다는 가짜뉴스가 유통되고 있지만 실제 5·18 유공자 자녀 중 지금까지 가점을 받아 공무원 등으로 취업한 사례는 2017년까지 391명으로 집계. 전체 수혜대상자 3만2751명의 1.2%에 해당.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국가직 7·9급 공무원 시험 전체 합격자 5826명 가운데 가점 대상 국가유공자 합격자는 2.2%인 132명이며 이중 5·18 유공자는 0.15%인 9명이라고 발표. 2017년 역시 5·18유공자 자녀 중 7·9급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합격자는 전체 1만9938명 중 19명으로 0.1% 수준.
5·18민주화운동의 당사자인 광주시는 심지어 5·18을 ‘전라도 독립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등 국론분열과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황당한 뉴스들이 버젓이 활개 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시는 ‘5·18 왜곡대응 TF팀’을 구성해 대응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광주시와 더불어 5·18을 왜곡 폄훼하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지난 15일 광주 YMCA에서 ‘자유한국당 3인 망언 의원 퇴출과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위한 광주범시민운동본부(약칭 5·18역사왜곡처벌 광주운동본부’ 출범식을 가졌다.
광주시 김옥조 대변인은 “극우 성향의 단체 채팅방이나 커뮤니티에 등 온라인을 통해 유포되는 5·18 가짜뉴스는 확산속도가 무척 빨라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며 “믿고 싶은 내용만 찾아본 뒤 확신을 갖는 ‘확증 편향’도 문제”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