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음주·회식 강요도 포함…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 보니

입력 2019-02-21 21:00
게티이미지뱅크

# 상사는 육아휴직 후 복직한 A씨를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주로 손님 맞이 공간으로 사용하는 곳 한 켠으로 A씨 자리가 옮겨져 있었다. 상사는 그에게 어떤 업무도 주지 않았다. 끝내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하던 날, 상사는 “아직도 부당대우라고 생각하느냐, 둘째는 아들 낳으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 낳고 오면 자리가 없어지는데 어떻게 또 낳느냐”고 말한 뒤 회사를 떠났다. <참고: >

21일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발표했다. 7월 16일부터 시작되는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위한 판단 기준을 마련해 혼란을 막겠다는 취지다.

매뉴얼은 법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분석해 어떠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A씨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이밖에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얼마나 지속적이었는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권고했다.

다음은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직장 내 괴롭힘의 예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아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함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함
▲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에게 대하여만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함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음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킴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나 병가, 각종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 행사
▲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의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만을 지나치게 감시
▲정당한 이유 없이 부서이동 또는 퇴사를 강요함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함
▲욕설이나 위협적인 말을 함
▲다른 사람들 앞이나 온라인상에서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함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함
▲집단 따돌림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컴퓨터, 전화 등)을 주지 않거나, 인터넷·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함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와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때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려면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직위·직급뿐 아니라 나이, 학벌, 성별, 출신, 근속연수 등을 포함한다. 노동조합이나 직장협의회 등 노동자 조직 소속 여부와 정규직 여부 등도 포함된다.

또 사회 통념에 비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이 있더라도 정도를 넘어야 한다. 한 예로 의류회사 직원 B씨는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팀장에게 디자인 시안을 보고했다. 팀장은 ‘신상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수정을 요구했다. 업무량이 늘어난 B씨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처벌 조항을 두지는 않았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대응 조치에 관한 내용을 10인 이상 사업장 취업규칙의 필수 기재 사항으로 규정했다. 처벌보다는 자율적인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노동부는 예방·해결 과정 시 고려해야 할 사항과 취업규칙 표준안도 공개했다. 여기에는 폭행과 협박뿐 아니라 반복적인 욕설과 폭언, 음해, 심부름 등 사적 용무 지시, 정당한 이유 없이 상당 기간 일을 거의 주지 않는 행위 등이 포함됐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행위로는 음주, 흡연, 회식 참가 강요와 인터넷이나 사내 네트워크 접속 차단 행위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1년 1회 이상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회사에 대한 신고와 조사, 사실로 확인될 경우 가해자 징계 등도 담고 있다. 개별 사업장은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시점부터 사정에 맞게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영하고 이를 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에 반영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