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로 인정한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연령을 65세로 상향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망 또는 노동력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연한’을 30년 만에 65세로 올리면서 정년 연장, 보험료 인상 등 노동계와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박모씨 등이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총 2억5416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깨고 ‘노동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해 손배배상액을 다시 계산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은 2015년 8월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로 당시 4세였던 아이를 잃은 박씨 등 유가족이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1·2심에선 ‘일반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한은 보통 60세가 될 때까지로 하는 것이 경험칙'이라는 기존 판례에 따라 노동 가동연령을 60세로 판단해 손해배상액을 계산했다. 박씨 등 유족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불복 이유는 가동연한이었다.
박씨는 “기존 판결이 선고된 1980년대와 비교할 때 고령사회 진입과 평균수명의 연장, 경제 수준과 고용조건 등 사회·경제적 여건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며 상고 이유를 밝혔다.
배상액을 산정할 때 사망한 피해자의 노동 가동연령을 언제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위자료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노동 가동연령의 상향 여부는 일반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국민 생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보험제도와 연금제도의 운용에도 상당한 관련이 있다”며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년 전인 1989년 12월 55세였던 노동가동연령을 60세로 상향한 바 있다.
법원은 또 하급심에서 가동연령을 두고 엇갈린 판단이 나오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보고 지난해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앞서 2016년 광주고등법원은 목포시의 한 상가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한 박모씨(당시 49세)의 유가족이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가동연한을 65세로 판단했다. 2017년에도 수원지방법원 민사5부가 교통사고 관련 민사 소송 항소심 도중 가동 연한을 65세로 확대 적용한 바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나 보험료 동반 상승이 예상되는 등 보험업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는 그동안 최근 평균수명은 증가하고 있지만 건강수명(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감소 추세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대부분 소득이 낮거나 불안정한 직종에 집중돼 있다고 했다.
지난해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박상조 손해보험협회 법무팀장은 “현재 자동차보험 표준 약관에선 대부분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보고 있다”며 “가동연한이 늘어나면 보험료가 최소 1.2% 이상 인상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도 정년 규정을 높이자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행 정년 규정은 ‘60세 이상'으로 돼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