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의 위로] 눈물 위에 임한 위로

입력 2019-02-25 01:02

하나님은 눈물을 닦아 주심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고(계 7:17), 모든 눈물을 눈에서 닦아 주심으로 위로해 주신다(계 21:4).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닦아 주시는 것을 보면 눈물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눈물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눈에는 눈물샘이 있어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와 눈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눈은 메마르게 되고,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평소에 조금씩 흘러나온 눈물이 슬픔을 만나거나, 감동을 받게 되면 빗물처럼 쏟아지게 된다.

하나님은 눈물을 귀히 여기신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기록은 성경에 나온다. 물론 예수님은 웃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늘 기쁨으로 충만한 분이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긍휼히 풍성하신 까닭에 슬픔을 당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을 눈물로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을 때 감동을 받으셨다(눅 7:38).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눈물을 소중하게 여기셨다(눅 7:44). 그 눈물은 용서받은 여인의 감격의 눈물이었고, 사랑받은 여인의 감동의 눈물이었다(눅 7:47).

눈물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름이다. 눈물은 우리 상한 심령을 치유한다. 눈물은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회개의 눈물은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진실한 눈물은 우리 마음에 담긴 고통스러운 찌꺼기들을 걸러 내어준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치유되지 않으면 독이 된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때 우리 삶에 나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우리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딱딱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완고하고 완악하게 만든다. 복수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게 한다. 울어야 치유된다. 눈물이 우리 병든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한다.

눈물을 흘릴 때 차가웠던 우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해인 수녀는 “눈물은 차가운 나를 따스하게 만들고 경직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고마운 것이다”라고 노래한다. 딱딱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무엇이든 죽어가는 것은 차갑고 딱딱하다. 반면에 살아 있는 것, 생명이 넘치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눈물은 우리를 부드럽게 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너무 많이 울다 보면 힘이 다 빠지고 무력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신비로운 평강과 기쁨이 깃드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 눈물의 신비다.

눈물은 영혼의 창을 깨끗게 한다. 영혼의 창이 더러워지면 세상이 더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영혼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고 하나님을 본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창이 문제다. 유리창이 더러우면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더럽게 보인다.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영혼의 창이 맑아야 한다. 눈물을 통해 영혼의 창이 깨끗해지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떤 고통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고통이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의 이유와 의미를 모를 때다. 고통 저 너머에 있는 즐거움을 보지 못할 때다. 고통 저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기쁨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시면서 십자가를 참으셨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히 12;2). 눈물을 흘릴 때는 고통의 때다. 고통의 때는 깨어짐의 때다.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할 때 아프다. 그런데 놀라운 역설은 모든 생명과 풍성한 열매는 깨어짐을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멜 깁슨이 만든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를 보면 하나님의 눈물이 나온다. 예수님이 고통 중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하늘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아들을 희생한 하나님 아버지가 흘리신 눈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깨어지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생수를 불러왔다.

예수님은 반석이시다. 반석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깨어지실 때 생수가 쏟아졌다. 더러움과 죄를 씻는 샘이 쏟아져 나왔다(슥 13:1). 깨어짐이 없이는 십자가의 생수도 없다. 모든 풍성한 생명은 깨어짐을 통해 주어진다. 씨앗이 깨어질 때, 생명이 흘러나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풍성한 열매를 생산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궁에 10개월 동안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한다. 그때 양수가 터지면서 물과 피가 쏟아진다. 바로 그 순간에 새 생명이 태어난다. 양수가 터지는 것은 깨어지고 찢어지는 경험이다. 바로 그 고통의 순간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눈물은 깨달음을 얻게 하는 은총의 선물이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기 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눈물을 흘릴 때 깨닫게 된다. 나는 모든 일이 잘될 때보다 눈물을 통해 더욱 많이 배웠다. 더욱 깊이 깨달았다. 깊은 눈물이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쇼펜하우어는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아니한 마음으로는 사람을 모른다.”고 말했다. 눈물을 흘릴 때 영적 각성을 하게 된다. 칼릴 지브란은 “눈물은 내 가슴을 씻어주고, 인생의 비밀과 감추어진 것들을 이해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깨어짐의 아픔 때문에 눈물이 흘러내리지만, 바로 그 깨어짐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눈물은 우리 눈을 열어 준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 준다. 눈물을 통해 마음의 눈이 열리면, 상실한 것만 바라보던 우리 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잃어버린 것을 세어보며 원망했던 우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세어보고 감사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하나님께 받아 누렸던 복을 세어보며 감사하게 된다. 그 순간 원망은 사라지고 감사하게 된다.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감사의 샘에서 감사의 물을 길어 올릴수록 더욱 감사가 넘치게 된다.

눈물은 상처를 진주로 만드는 성스러운 분비물이다. 조개는 상처를 분비물로 감싸고 또 감싸는 중에 진주로 만든다. 상처 속에는 진주가 담겨 있다. 하지만 모든 상처가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싫다고 원망하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독이 된다. 하지만 상처가 잘 치유되면 상처는 진주가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거룩한 약이 된다. 마치 예수님의 상처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와 인류의 모든 죄악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같다. 눈물을 통해 깨달음이 깊어지면 상처를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상처 속에 담긴 진주를 보게 되고, 상처 속에 담긴 아름다운 향냄새를 맡게 된다. 그때 상처가 진주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눈물은 우리 영혼의 성찬이다. 켄 가이어는 눈물이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고 눈물 속에 영원이 녹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눈물이 영혼의 성찬이라고 말한다.

“눈물의 순간들은 저마다 하나의 창이 된다. 각각의 창에는 그 순간을 거룩하게 할 뿐 아니라 그 고통을 초월할 수 있게 만드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흘리는 눈물마다 한 조각 영원이 녹아 있다. 한 조각 사랑과 연민, 애정이 스며들어 있다. 모두가 천국에서 발원하여 우리 영혼의 성찬으로 이 땅에 내려온 것이다. ...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교제는 눈물의 성찬을 통해 온다.” (켄 가이어, 『울고 싶은 날의 은혜』, 두란노, 85쪽)

켄 가이어는 모든 눈물의 발원지가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눈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눈물을 억누르지 말라. 슬플 때는 슬퍼해야 한다. 눈물이 날 때는 울어야 한다. 울어야 건강하다. 울어야 산다. 울어야 치유된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병을 치유해 주셨다.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시다. 눈물에 감동을 받으신다. 우리는, 눈물을 흘릴 때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깊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치유해주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 눈물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보석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통 중에 눈물 흘리는 자를 찾아가서 위로해 주신다. 그래서 나는 가끔 혼자 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운다.

강준민 (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