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부동산’을 싸게 매입한 뒤 공문서를 조작해 세입자가 없는 것처럼 속여, 이를 담보로 13억원 대출 사기를 저지른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깡통부동산은 전세금 등 채무가 집값에 육박하는 부동산이다.
서울북부지검 건설·조세·재정범죄전담부(부장검사 김명수)는 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 행사·사기 혐의로 양모(56·여)씨와 정모(55·여)씨, 김모(42)씨를 구속해 지난 1일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이미 임차인이 입주한 미분양 빌라 등 깡통부동산만 노려 싼값에 매수한 뒤 전입세대열람내역서를 마치 기존 세입자가 없는 것처럼 위조했다. 이후 이를 담보로 피해자 14명에게서 28차례에 걸쳐 13억원을 빌려 빼돌렸다.
전입세대열람내역서는 제3자가 담보 목적의 부동산에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문서지만, 주민등록등본과 달리 관공서에서 별도의 관인이나 위조 방지용 표식이 없어 위조가 쉽다는 점을 노렸다.
의류업에 종사하던 양씨는 동종업계 지인 정씨, 정씨의 지인인 김씨에게 차례로 범행을 제안했다. 세 사람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역할을 분담해 총 19회에 걸쳐 공문서를 위조해 범행을 저질렀다. 우선 정씨와 김씨가 깡통부동산을 물색해 양씨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김씨는 미등록 공인중개인으로 중개업소에 일하면서 깡통부동산 정보를 물색했다. 양씨는 이를 통해 빌라를 매수하고 전입세대열람내역을 발급받았다. 다시 정씨와 김씨는 컴퓨터를 이용해 전입세대열람내역을 위조하고 사기 대상을 물색했다. 마지막으로 위조된 전입세대열람내역을 제시하고 돈을 받아내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인천과 서울, 경기도 부천과 광명 등에서 적게는 6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5000만원까지 빌라 등 깡통부동산 20채를 사들였다.
건물매입에도 거의 돈을 들이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전등기나 근저당등기에 돈이 필요한데, A건물을 위조해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B건물 비용처리를 하는 식이었다”며 “누구나 당할 수 있겠다 싶은 특이한 사안이었다. 피해자 중에는 금융기관이나 사채업자도 있지만 일반인도 있다”고 말했다.
범행으로 빼돌린 돈은 양씨와 정씨가 나눠가졌고 김씨에게는 전입세대열람내역서 위조 및 깡통부동산 소개 대가로 돈을 줬다. 위조는 건당 10~20만원, 부동산 소개는 건당 50~100만원을 줬다. 양씨와 정씨는 각각 의류판매업과 의류유통업을 하면서 사업하는 데 돈을 썼다.
검찰 관계자는 “주거용 부동산을 담보로 금전거래를 하는 경우 선순위 임차인의 거주 여부와 전입세대열람내역서의 위·변조 여부를 주의 깊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전입세대열람내역서를 발급하는 관공서에서도 관인이나 마크 등 위조 방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