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1호 법안’ 여성폭력방지법이 남혐 합법화? 팩트체크 해보니

입력 2019-02-18 16:56 수정 2019-02-18 16:57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발대식 및 1차 업무보고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투 1호 법안인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올해 12월 25일 시행된다. 이 법을 발의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많은 비난이 있었다. (이 법으로 인해) 여성의 삶이 실제로 변화된 것이 없는데도 남성들이 역차별을 겪고 있다는 논리가 횡행했다”면서도 “법 시행 전 개정안 준비 등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지난 12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정춘숙 의원이 2월 대표 발의했고 국회를 통과하는데 약 10개월이 걸렸다. 비교적 빠른 편이다. 이 법안은 여성폭력을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여성폭력인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의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2차 피해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적시한 최초의 법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집단 따돌림, 사용자로부터의 불이익 조치 등으로 규정했다.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굉장한 진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정춘숙 의원이 주최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 평가와 과제’ 포럼이 1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에서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주요 내용과 의의를 살펴보고, 입법 과정에서 남겨진 과제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젠더를 기반으로 여성폭력의 정의와 2차 피해를 법으로 규정하고 피해자나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담아냈다는 것은 굉장한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정춘숙 의원은 환영사에서 “제정 과정이 상당히 어려운 법안이었다. 지난해 2월 발의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다른 법 제정에 비해 빠른 편이다. 미투 운동 덕분에 이 법이 아쉽게나마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종안서 좁아진 ‘여성폭력’ 정의, 여전히 아쉬워”

다만, 여성폭력에 대한 정의가 훼손됐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정춘숙 의원은 “처음엔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폭력’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범위가 축소됐다. 일각에서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냐’는 반발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여성폭력’을 정의하는데만 두 달이 걸렸다. 원안과 최종안 사이 간극 중 정춘숙 의원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그는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감안해 여성이라고 한정짓지 않고 광범위한 개념으로 설정했지만 여기에 여성이 추가되면서 되레 논란의 소지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폭력방지법’ ‘양성폭력방지기본법’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으나 합의하지 못했다. ‘젠더폭력’라는 학술용어를 그대로 법안명에 쓰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동의를 얻지 못했다. 결국 대체 용어를 찾지 못하고 법안명을 그대로 둔 채 9월 중순 법안을 넘겼다. 법사위 측은 “여성폭력이라는 용어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젠더’라는 표현이 보편화된 개념이 아니고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어서 여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상징적인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만을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개별법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성별로 특정한 것은 유례가 없다”고 밝히면서 “광범위한 성폭력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여성폭력 등 방지 기본법’으로 수정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사위 소속 대다수 의원들은 법 적용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지 않을 경우 당초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여가부의 부정적인 입장에 대해 주광덕 의원은 “남성 피해자를 여가부에서 다 보호하려고 욕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결국 법사위는 여성폭력을 ‘여성에 대해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좁혀 의결했다.

남성혐오 합법화?… 여폭방지법 팩트체크

“정부가 나서서 남성혐오를 합법화 한다” “여성만을 위한 법”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법이 젠더갈등의 양상으로 비화되거나 여성계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법은 처벌법이 아니라 기본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처벌 조항조차 없는 기본법이다. 기본적인 원칙이나 준칙을 정한 법률을 의미한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남성혐오에 면죄부를 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폐기를 촉구합니다’라는 글도 사실과 다르다. 글쓴이는 “여폭법은 ‘여성’만을 피해자로 규정해 워마드의 온갖 남성혐오 범죄 등은 법률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생물학적 남성에 대한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등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법안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피해를 입었을 경우 남녀고용평등법 등 기존 법안대로 동등하게 처벌할 수 있다. 더욱이 남성혐오성 발언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근거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남성 비하·혐오 표현은 모욕죄·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신설된다고 해서 이전 법률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이 가정폭력, 성폭력, 디지털폭력 등에 더 빈번하게 노출되는 현실을 고려·참작해 탄생했다. 관계부처가 유형에 따라 산발적으로 대응하던 형태가 아니라 콘트롤타워를 만들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규정을 마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