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생각보다 깊었다. 승격팀 샌드박스 게이밍의 발걸음에 거침이 없다.
샌드박스는 17일 서울 종로 LCK 아레나에서 열린 2019 스무살우리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정규 시즌 1라운드 경기에서 kt 롤스터를 2대1로 꺾었다. 샌드박스는 7승1패(세트득실 +10)를 기록해 단독 2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시즌 개막 전, 샌드박스가 지금과 같이 좋은 활약을 펼칠 거로 전망한 이가 얼마나 됐을까?
팬은 물론 LCK 관계자 대다수도 샌드박스의 선전을 예견하지 못했다. 시즌 첫 경기에서 젠지를 잡았을 땐 ‘이변’이었고 두 번째 경기에서 킹존 드래곤X를 꺾었을 땐 ‘파란’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샌드박스는 그리핀을 제외한 8개 팀보다 높은 곳에 서 있다.
샌드박스 선수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은 성적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성격이 모난 선수가 없으며, 서포터 ‘조커’ 조재읍과 미드라이너 ‘도브’ 김재연 중심으로 선수단이 똘똘 뭉쳐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서브 선수들, 코칭스태프와의 유대 관계도 끈끈하다.
원거리 딜러 ‘고스트’ 장용준은 샌드박스 돌풍의 비결을 묻자 “각자 개인 기량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저희는 한마음 한뜻으로 다 같이 움직인다. 저희는 ‘한 명이 무리하면 던지는 거지만, 다 같이 무리하면 승부수’라는 말을 명언처럼 새겨듣고 있다”고 전했다.
정글러 ‘온플릭’ 김장겸은 17일 기자실 인터뷰에서 “끝으로 김재연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동료를 이례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김재연이 라인전도 잘하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선수다. 주목을 덜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샌드박스 선수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천덕꾸러기에서 캐리머신으로 거듭난 사나이
지난 시즌 주전 경쟁에서 밀려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던 탑라이너, LoL 챌린저스 코리아(챌린저스) 무대에서 ‘쇼메이커’ 허수(담원 게이밍)에게 가려졌던 미드라이너가 지금처럼 좋은 활약을 펼칠 거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원거리 딜러 장용준이 MVP 포인트 700점을 쌓아 MVP 레이스에서 그리핀 ‘초비’ 정지훈(800점) 뒤를 이을 거로 예상한 이는 그보다 더욱 적었다. 장용준은 지난 시즌 LCK 최하위 원거리 딜러로 평가됐다. LCK 잔류 또한 희망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샌드박스 유니폼을 입고난 뒤 그는 ‘성령좌’라는 별명까지 얻어내며 단독 2위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장용준은 17일 경기에서도 MVP포인트 200점을 독식했다. 1세트에는 시비르로 ‘수성대장군’ 역할을 해냈고, 3세트에는 이즈리얼로 분당 대미지(DPM) 1000을 넘길 만큼 화끈한 공격을 펼쳐 상대를 괴롭혔다.
자신감이 지금과 같은 선전의 제일 큰 원동력이다. 장용준은 경기 후 국민일보와 만나 “오늘은 제가 잘해서 MVP를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 MVP 1위 등극을 향해 열심히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자신감과 팀원의 케어가 제 발전의 원동력이다. 작년보다 게임이 쉽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전에는 앞이 막막했는데, 지금은 계속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시즌이 너무 재미있다. 아직 1라운드가 끝나지 않았지만, 2라운드에도 좋은 성적을 내 팀원들과 같이 결승전에도 올라가고, 리프트 라이벌즈에도 참가하고 싶다. 다 같이 재밌게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
다음번 아프리카 프릭스전은 우리 실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두겠다. 오늘도, 지난번 진에어 그린윙스전도 실수가 나왔다. 지금까지 1라운드를 이겨왔던 것처럼 실수를 줄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최약체로 지목됐던 샌드박스지만, 선수들은 겨우 한 달 만에 위닝팀의 마인드를 갖췄다. 챌린저스발 모래폭풍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일까. 샌드박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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