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잘알 바이퍼와 상상력의 팀

입력 2019-02-18 08:00
라이엇 게임즈

그리핀 ‘바이퍼’ 박도현과 인터뷰를 할 때면 종종 그가 ‘LoL 박사’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메카닉(피지컬)도 뛰어나지만, 그에 못잖게 이론적으로도 빠삭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근거를 늘 명료하게 설명한다.

일전에 ‘타는 불길(W)’을 먼저 강화하는 루시안으로 대(對) 비 원거리 딜러 상대법을 제시하기도 했던 박도현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9.3패치에서 간접 하향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카이사를 위해 새로운 아이템 트리를 내놨다.

그리핀은 17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아프리카 프릭스와의 2019 스무살우리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정규 시즌 1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2대0으로 완승했다. 오는 20일 젠지전을 승리할 경우 그리핀은 1라운드 전승으로 시즌 반환점을 돈다.

이날 박도현은 1세트에 자신의 베스트 픽 중 하나인 카이사를 선택, ‘몰락한 왕의 검’을 먼저 구매하는 독특한 아이템 트리를 선보였다. 9.3패치 적용 이후 많은 원거리 딜러들이 ‘B.F. 대검’ ‘곡괭이’ ‘곡괭이’ 트리를 선택해온 것과 대비됐다. 경기 후 아이템 트리에 관해 묻자 박도현은 “사실 비밀로 하려 했는데…”라고 운을 띄우며 자신의 아이템 트리 선택 계기를 밝혔다.

“카이사는 공격 속도가 굉장히 중요한 챔피언이다. 라인전도 신경 쓰면서 ‘이케시아 폭우(Q)’와 ‘고속 충전(E)’을 빠르게 진화시키려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또 몰락한 왕의 검은 카이사 같은 인파이팅 챔피언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1대1 싸움에도 유리하다.

또한 몰락한 왕의 검을 갖춘 뒤 바로 ‘구인수의 격노검’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곡괭이 2개를 먼저 구비하는 게 낫다. 바로 구인수의 격노검을 살 경우 이케시아 폭우 진화가 늦어진다. 곡괭이 2개를 먼저 구매한 뒤 구인수의 격노검을 업그레이드해야 더 빨리 진화할 수 있다.”

감기를 앓고 있다는 박도현은 코맹맹이 소리로, 그러나 그 명쾌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개인적으로 B.F 대검 아이템 트리는 너무 ‘헤비’한 느낌이다. 이전의 ‘폭풍갈퀴’ ‘곡궁’ ‘도란의 검’ 트리 비해 메리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B.F. 대검 아이템 트리는 ‘무한의 대검’ 다음에 구인수의 격노검을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경우에는 공격속도가 부족하고, 고속 충전의 진화가 늦어져 답답한 느낌이 있더라. 무한의 대검은 다른 치명타류 아이템이 섞여야 더 활약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한방은 강력하지만 지속적인 교전에서 활약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박도현은 9.3패치 이후에도 자신의 장기인 비 원거리 딜러 챔피언을 꾸준히 활용하고 있다. 지난 15일 kt 롤스터전 당시에는 다리우스를 골랐다. 이날 아프리카전에서는 2세트에 야스오를 선택해 아프리카를 베었다. 그는 9.3패치 이후에도 여전히 비 원거리 딜러 챔피언이 쓸 만하며,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9.3패치 이후 원거리 딜러가 좋아진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예전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른 선수들도 비슷하게 ‘원거리 딜러가 엄청난 상향 효과를 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재 원거리 딜러 선수들은 이동기가 있고, 초중반 교전이 강력하거나 라인 클리어가 강력한 챔피언을 선호한다. 루시안, 카이사, 이즈리얼, 시비르 등이다.

루시안을 제외하면 비 원거리 딜러 챔피언이 사거리 싸움에서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즈리얼이 껄끄럽긴 하지만,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가 비 원거리 딜러 활용할 여지가 있지 않나. 계속 연습하며 챔피언 간 상성 구도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챔피언의 성능이 좋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바로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그리핀 바텀 듀오는 이날 야스오-갈리오를 선택해 ‘단식 메타’를 선택한 이즈리얼-브라움을 상대했고, 큰 어려움 없이 라인전 우위를 점했다. 박도현은 “개인적으로 야스오 상대로 단식 메타를 고르면 다른 챔피언을 상대할 때만큼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확실히 라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야스오를 고른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승리의 공은 팀원들에게 돌렸다. 박도현은 “갈리오가 쉽게 다른 라인을 돌아다닐 수 있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정글러가 바텀을 비롯해 모든 라인을 잘 봐줬다. 미드라이너도 도움을 줬다. 다들 알아서 잘해준 게 연결돼 쉽게 라인전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며 팀워크가 승리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리핀 김대호 감독은 상상력과 재미를 강조하지만, 그 두 가지만으로는 강한 팀이 될 수 없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이 요구된다. 아이템 하나를 놓고 일장연설을 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논리가 필요하다. 그리핀과 박도현은 그걸 갖췄다. 2019년 그리핀은 높은 지능까지 갖춘 괴물이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