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 포스트잇 떼면 벌점 깎아주는 교사… 올해 첫 스쿨미투 집회

입력 2019-02-17 16:00 수정 2019-02-17 16:26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페이스북

1년 전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며 스쿨미투 폭로가 시작됐다. 서울에서 시작된 집회는 부산, 충청, 인천, 대구로 번졌다. 무려 80여 개 학교에서 고발자가 등장했다. 유엔도 이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가와 스쿨미투 당사자를 스위스 제네바에 초청해 이야기를 청취했다. 유엔 측은 “학내 성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기관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청소년페미니즘모임’ 등은 16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스쿨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는 주제로 서울 2차 스쿨미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1년 동안 스쿨미투 증언이 한국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정부의 대처는 바뀐 것이 없다”고 외쳤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페미니즘 학교를 만들자” “스쿨 미투가 학교를 바꾼다” 같은 구호 등이 울려퍼지기도 했다. 이들은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교사 대상 페미니즘 교육 실시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집회 선언문에는 “2018년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쓰인 해시태그는 ‘스쿨미투’였다. 전국 70여 개 학교에서 스쿨미투 고발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부산의 한 교사가 스쿨미투 고발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고양의 한 학교는 ‘한번 더 스쿨미투 고발을 하면 징계하겠다’며 고발자를 위협했다. 우리의 스쿨미투 고발은 피해 사실에 대한 폭로를 넘어 평등하고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페이스북

참가자들의 집회 발언에 앞서 이달 4일부터 9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아동인권위원회 사전미팅 결과가 전해졌다. 청페모 등은 지난해 스쿨미투 운동이 범사회적으로 번졌지만 정부가 미온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고발자들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스쿨미투에 대한 적절한 권고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며 제시한 문서에는 ▲신속하고 정확한 실태 조사 ▲페미니즘·인권 교육 ▲사립학교법 개정 ▲학생인권법 제정 ▲피해 학생의 진실과 정의 및 배상에 대한 권리 보장 ▲전문성 있는 상담인력 발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집회에 참석자들은 스쿨미투 가해 교사에 대한 약식 처벌에 분노했다. 이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스쿨미투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학교 자체적으로 징계 철회하거나, 검경에서는 불기소 처분이 반복되고 있다. 양지혜 청소년페미니즘모임 활동가는 “스쿨미투 1년에도 용화여고의 전 교사에게 내려진 불기소 처분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일컬어지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앗아갔다”며 “스쿨미투는 교육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빨리 응답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페이스북

이어 고발자들이 스쿨미투 진행과정과 문제사항 등을 공유했다. 이들은 스쿨미투 운동이 발발한지 1년이 지났지만 교육현장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입모아 강조했다. 책임은 학교와 정부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학교와 정부가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리는 동안 학생들은 성폭력과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부산스쿨페미니즘연합은 “부산 한 여고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주머니에 돈을 잘 꽂게 생겼다’며 성매매를 의미하는 발언을 했다. 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페미니즘 교육이 왜 필요한 지 보여주는 사례다. 교사들은 생활기록부를 걸고 학생에게 위협을 가해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학교 성폭력 전수조사에서도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성폭력을 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북일고 학생은 이 자리에서 “상담교사, 경찰관, 변호사 등이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남성 중심적 해결 과정 속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2차 가해라고 했다. 그는 “쟤는 페미니스트라 불순한 의도로 미투를 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광남중 학생도 2차 피해를 호소했다. 그는 “한 도덕 교사가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는 말을 했다. 해당 교사는 성희롱 발언 대부분을 인정했지만 경찰은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 교사가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걸린 5달 동안 피해 학생들은 욕설, 죽이겠다는 협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길고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토로했다.

부원여중 졸업생은 “가해교사들이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스쿨미투를 알린 포스트잇을 떼어오면 벌점을 상쇄해준다고 학생들을 유인했다. 포스트잇을 붙이는 학생들과 떼려는 학생들이 육탄전을 벌이는 일이 벌여졌다”고 폭로했다.

대구 혜화고 고발자는 “스쿨미투 이후 바뀐 게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후배들은 여전히 혐오 발언을 일삼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고 있다. 대자보와 SNS를 통해 스쿨미투를 알리는 과정에서 교사로부터 협박성 메시지가 왔다. ‘제보자가 누군지 아느냐’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