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81. 거짓으로 치장된 인간의 죽음과 파멸의 연극 ‘빌미’

입력 2019-02-17 10:25

거짓과 조작으로 은폐된 역사의 환부

인류 문명발달은 인간의 욕망을 비대해질 정도로 변화시켰고 권력지배 욕망은 인간과 질서를 파괴하며 성장했다. 정치의 시계는 모순과 거짓, 은폐와 조작, 자유민주주의 길을 걸으며 두터운 역사를 남겼다. 정치사(史)의 진실은 허공을 맴돌고 은폐된 거짓은 진실로 둔갑해 권력과 부(富)를 축적해 왔고 불균형 사회는 쓰라림의 저항만 삼켰다. 때로 진실을 뒤엎는 판결은 인간을 잔혹할 정도로 타격하며 더디게 민주주의 문을 열었다. 여전히 ‘악’이 ‘선’으로 , 거짓이 진실로 은폐된 역사를 돌릴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한국 사회 수면(水面)에 있을 것이다.

이승만 정부 수립(1948년 8월15일) 제1공화국부터 대한민국 정치사의 등장과 자유민주주의 발전은 풍랑을 겪었다. 유신시대와 5,6공화국의 거친 바람은 민중과 시민들의 가슴을 뚫는 총탄이 됐고 부정선거와 제헌국회, 유신헌법, 군인과 시민, 폭로와 폭력, 고문과 조작, 의문사와 죽음, 민주항쟁, 진실의 은폐, 3당 합당, 시민, 저항, 권력, 촛불 등으로 쌓아올린 시대는 70년의 파란만장한 정당 창당과 정치인들의 혈투의 무대였다. 최원석 작 연출 연극 <빌미>(1월25~2월3일, 아르코예술극장)은 부패한 권력자가 살아 숨 쉬는 사회 권력구조의 환부를 수술한다.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부패권력의 장면들을 수술대 위에 비틀어 올려놓고 칼날에서 반사되는 은폐와 조작의 정치사의 속살을 은유적으로 묶어낸다.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빌미는 은폐의 기술로 조작된다. 몰락하는 두 가족의 이야기지만 최원석은 노련하게 웃으면서도 부패한 환부를 연극적으로 도려낸다. 마치, 명의(善醫)가 생명 완치율을 높이는 것처럼.

최원석 작, 연출 극단 인어의 <빌미>

무대는 대학교수 최명광(한규남 분)이 사들인 서울 외곽지역 단층 펜션이다. 펜션 가옥의 구조는 지배 권력이 부를 축적해 은밀히 살아가는 자연도시를 연상케 된다. 고급스러운 탁 트인 실내공간은 테라스를 연결해 배우 움직임을 확장하고 장면의 변화를 연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무대 공간으로 배치했다. 펜션 테라스 무대 앞과 좌우 일부 공간을 물이 흐르는 개울가로 이원화하고 거실 뒷면 한쪽 길은 외부로 연결된다. 실내 좌·우는 주방과 방 입구로 구분된다. 서울의 한 두 시간쯤 거리에 있는 최명광 펜션은 핸드폰 통신이 불규칙할 정도로 외부(사회)와 소통이 차단되고 있어 ‘침묵의 집’으로 불려진다. 무대는 관리인 김철수(박정순 분)와 강렬한 색의 한복 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내 정애란(홍윤희 분)이 신부 측 부모대행 결혼식에서 본명을 말해버린 실수를 쏟아내고 주인 최명광과 아내 강순옥(송현서 분)을 모델로 알바 연습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김철수 부부는 펜션 관리인으로 근근이 결혼식 알바를 하면서도 교수 최명광의 펜션주변 건물에 ‘천국 치킨 집’을 운영하고 있다. 임대료도 못내 망해가는 치킨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군대시절 중대장으로 모신 최 교수의 부와 권력에 붙어 아첨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폭력으로 지적발달장애를 보이는 김하늘(이종윤 분)은 걸핏하면 집을 때려 부수고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와 팔씨름을 하고 노쇠해진 김철수는 아들에게 완패 당하는 장면을 지나면 연극 <빌미> 는 교수 최명광이 부인과 딸 최승연(조수정 분)의 유학송별회를 위해 투란도트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르며 펜션에 들어선다. 연극은 진성필(김철리 분)의 등장과 최승연과의 약혼 발표, 죽음을 조작하는 반전을 거듭하며 탄력적인 무대를 그려나간다.

권력과 은폐의 민낯 ‘침묵의 집’

극중 인물 최명광은 딸에게도 무늬만 진보교수인 아버지다. 지식인의 논쟁과 소리는 공허하고 진실은 조작과 은폐로 변화무쌍한 권력의 주변부를 돌며 부를 축적하고 절대 권력을 유지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연출은 지식인의 가면을 쓰고 있는 부패한 인물로 조롱하고, 위선의 가면 뒤로 흐르는 은밀한 거래의 기술로 치킨 집 건물이 대학과 유착되어 자동차 대학 기숙사로 들어선다. 펜션 인근 땅을 사 모으며 부의 탐욕과 욕망을 거세할 수 없는 최명광은 80년대를 거쳐 여전히 건재한 한국 사회의 부패 권력의 그림자다. 청산되지 않는 권력의 은밀한 작동과 은폐, 조작이 난무하던 시대 설정을 두 사람 관계로 묶는다. 관리인 김철수는 최 교수를 중대장으로 모셨던 군인출신으로 30년 동안 뼛속까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김철수는 군대 구호를 외치며 가부장적 위계 폭력을 휘두르며 가족의 질서를 잡고 부인과 아들은 절대 복종으로 길들여져 있다. 김철수의 아내 정애란은 강렬한 색으로 치장된 한복 저고리를 입고 산다. 한복 저고리는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씻어낼 수 없는 현재시간으로 돌려놓는다. 팔씨름만 외치며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는 지적발달장애인 김하늘은 시대의 정치역사 속에서 고문과 폭력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과 닮아있다. 시선은 진실 되고 정의롭지만 빌미로 파멸되어 가는 극중인물 내면의 진실은 타협되고 정의와 진실은 실종된채 펜션은 죽음으로 몰락한다. 극이 종점으로 향할 때 까지 바보스러운 김하늘은 펜션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은폐된 과거 기억을 환기시켜내며 긴장의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장면은 최명광의 권력 유지와 유착 ,김철수와 군대시절의 관계, 진성필과 최승연의 약혼발표, 논문표절사건과 복수, 동굴의 기억, 치킨 집 운영문제, 송별회 등으로 분위기는 전환되고 무대는 갑작스러운 진성필 죽음을 둘러싸고 사실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빌미의 시선이 교차된다. 이 장면을 다시 돌려보자.

김하늘은 초등학교 동창인 승연에게 청혼을 하는 진성필에게 팔씨름을 제안하고 진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게임을 한다. 진성필은 팔씨름에 진후 최명광과 논쟁을 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지고 물과 약을 찾으며 생명에 강한 애착을 보이지만 최명광과 아내는 딸과 김하늘을 밀쳐내며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다. 연극 빌미의 긴장감 있는 질주는 진성필의 죽음 이후부터 전개되는 상황들이다. 죽음의 빌미가 최 명광 시선으로 조작되고 만성 천식을 앓아온 진성필의 멱살을 잡고 호흡곤란을 유발했다는 점으로 하늘은 성필을 죽인 가해자로 바뀐다. 하늘이는 엄마(강순옥)와 진성필 과거 두 사람이 펜션 인근 동굴에서 어른흉내 소꿉놀이 했던 관계를 폭로하고 혼란에 빠진 승연이는 방으로 옮겨진 뒤 살기위해 문을 열고 나오려 하는 진성필을 향해 “나오지 마”라고 소리치며 문을 닫고는 숨통을 끊어 놓는다.
김철수와 김애란은 가해자로 몰린 아들과 사건에 의문을 갖지만 펜션의 소유권 이전과 영구적인 치킨 집 운영이라는 은밀한 제안을 묵시적으로 받아들이고 30년 관계를 유지해온 관리인은 군가를 부르고 무조건 복종을 외친다. 무대는 원산폭격과 과거 군기잡기 형태가 자행되고 정애란은 ‘아모르파티’를 부르며 죽음으로 파멸되어 가는 가족과 펜션의 몰락을 빠른 속도로 장면을 환기시킨다. 술병으로 부패한 최명광 머리를 내리치며 무대는 두 가족이 뒤엉켜 죽음의 핏물로 넘쳐난다.

정애란은 포크를 들고 남편 김철수를 향해 “하늘이를 그렇게 패고도 모자라 또 패냐? 반푼이 만들어 놓은 것도 성에 안차? 넌 최명광 똥구멍에 붙은 기생충만도 못한 놈이야” 대사를 토해내며 남편을 찌르고 한복 저고리를 벗는다. 순백의 속치마를 걸친 정애란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부패한 권력과 하수인을 향해 죽음의 최후를 맞게 한다. 한복은 폭력의 역사와 부패한 정치사를 씻어낼 수 없는 침묵의 저항이다. 죽음 뒤에 한복을 벗고 순백의 모습으로 환치된 것은 여전히 진실의 규명을 외치는 민중과 시민의 상징이 된다. 연출은 이 장면에서 극의 긴장과 리듬을 살리며 날카로운 미장센으로 도려낸다.

은폐와 조작으로 가해자가 뒤바뀌어지는 우연한 죽음의 빌미사이로 조작과 논쟁 그리고 파멸되어 가는 장면들을 속도감 있는 반전으로 밀어놓으며 연출은 극의 중반부를 탄탄하게 몰고 간다. 부패한 사회 권력의 몰락은 마치 땅으로 묻혀 버린 고대도시를 상상하게 한다. 펜션에서 자행된 죽음과 은폐의 흔적은 펜션과 다른 인간을 죽음으로 삼켜버리고 몰락하는 장면에서 무대는 일순간 폭우가 쏟아진다. 골프채로 천장 유리창을 내리친 승연은 죽음의 핏물을 씻어내고 죽음의 흔적은 빗물로 뚜렷해진다. 선과 악의 사이로 흐르는 저주는 개울가를 건너다가 정애란은 소용돌이에 빠져 죽고 순옥은 목을 매단다. 물은 치유다. 물로 죽음의 핏 자국을 씻어내고 흔적을 지워낼 수 없는 빗물은 핏물이 되어 지워낼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다.

부패한 권력의 도시는 몰락하고 죽음의 파멸로

연극 <빌미>는 부패한 한국정치사의 권력구조의 축소판이다. 조작과 은폐로 죽음의 최후를 맞는 한 자연도시의 몰락을 투영시켰다. 연출은 극의 구조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면서도 부패한 지식인 최명광을 희극적 캐릭터로 분화시켜 장면의 조도(照度)를 조절했다. 배우 한규남도 공허한 지식인과 부패한 권력자의 가면을 그려냈다. 자연은 삶과 사회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다. 그러나 지식인이자 부를 축적한 부패한 권력자 최명광의 펜션은 핸드폰 통신이 불규칙하다.

통신 신호음이 단절되고 불규칙적으로 균열되어 있는 펜션은 국가권력으로 의문사 된 죽음, 조작과 은폐로 가려진 피의 역사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한복판에 살고 있는 최명광은 부패권력을 향한 시민사회의 신호음과 단절되어 있는 현상이다. 펜션은 조작과 은폐가 난무하고 거짓이 진실이 되어 의문의 죽음과 부패한 권력자가 넘쳐나도 침묵하는 집이다. 추악한 사회구조다.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는 연극 빌미의 극중 구조를 탄탄하게 받치며 긴장감 있는 상황으로 끌고 갔고, 연출가 김철리를 진성필로 등장시킨 것은 인물을 분해하는 연출의 탁월한 통찰력이다. 특히 지적장애인으로 분한 이종윤은 장면을 탄력적으로 환기시키며 극의 몰입을 높였고 박정순은 안정된 연기로 펜션 관리인이자 결혼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노쇠한 군인출신으로 그려냈다.

배우들은 희비극 적으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연출시선을 따라 극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연기를 보였다. 특히 반전으로 긴장감을 타격하는 장면(정애란이 아모르파티를 부르는 송별회와 최명광을 술병으로 타격하는 장면, 김철수의 죽음, 최승연의 관계의 반전, 핏물이 빗물과 섞여 죽음의 도시로 파멸 되어가는 마지막 장면, 하늘이가 동굴사건을 모호함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개울가로 향하는 죽음의 길 장면과, 극사실적 자연과 연결하는 무대 공간 구조와 비의 확장성 등)에서 연출은 무대를 응집하는 미장센으로 극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시선은 언어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번 극단 인어의 <빌미>는 웃음으로 파고들면서도 죽음의 피로 얼룩진 부패한 지식인을 통해 우리사회의 권력구조를 환기시켰다. 대사와 인물, 극중 구조와 장면 사이로 터져 나오는 말과 연출의 미장센은 웃으면서 부패한 사회 권력을 비틀고 현상을 파고든다.

▶연출 최원석은 국립극단 배우출신으로 2010년도에 극단 인어를 창단해 <변태>, <불멸의 여자>,<극장속의 인생>, <창밖의 여자>, <인어를 사랑한다> 등을 통해 자본과 권력 그리고 폭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왔으며 <불멸의 여자>로 2018년 제5회 서울연극인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민중과 지식인의 몰락을 다룬 연극 <변태>는 관객 호평을 받으며 2014년 제1회 서울연극인 대상과 극작, 연기상을 수상했고 그해 월간 한국연극 공연베스트 7에 선정됐다. 연극 <빌미>의 공연사진은 2018 창작산실 옥상훈 사진작가가 촬영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