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핀의 날갯짓이 멈출 줄을 모른다. 어느새 7전 전승이다.
그리핀은 15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kt 롤스터와의 2019 스무살우리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정규 시즌 1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2대0으로 이겼다. 그리핀은 7승0패(세트득실 +13)를 누적해 단독 선두 자리를 지켰다.
그리핀의 두뇌인 ‘타잔’ 이승용은 올 시즌에도 독보적인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날도 자크와 리 신으로 팀 승리에 이바지했다. 1세트에서 특히 빛났다. 팀이 불리한 상황에서 탑 갱킹을 성공시켜 활로를 뚫었다. 그리핀은 이 갱킹으로 상대 ‘협곡의 전령’을 무력화하며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이승용의 챔피언 폭은 다소 독특하다. ‘정글의 왕’답게 초식 정글러와 육식 정글러를 넘나든다. 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중에서도 세주아니, 자크 등 초식형 정글러의 남다른 숙련도다. 이승용 이전에 협곡을 호령했던 정글러들이 리 신이나 카밀 같은 육식형 정글러로 이름을 날렸던 것과 대비된다.
사실 이승용 역시 육식형 정글러를 더 선호한다. 그렇지만 게임 구도에 따라서는 “1대1에서 안 밀릴 자신이 있다”며 초식형 정글러 고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초식형 정글러가 은근히 육식형 정글러를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잿불거인’만 갖춘다면 육식형 정글러에게 크게 밀린다는 느낌이 없다. 또한 후반으로 간다면 초식형 정글러가 더 좋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많은 LCK 정글러들이 이승용을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 또는 롤모델로 꼽는다. 적어도 협곡의 3개 라인을 제외한 지역, 즉 정글에서는 이승용이 곧 메타다. 그는 지난해 12월 열렸던 2018 LoL KeSPA컵에서 탈리야와 세주아니를 가장 먼저 꺼냈다. 올 시즌에는 ‘구원 올라프’로 담원 게이밍을 제압했다.
그는 어떤 챔피언이든 게임 구도에 따라 최적의 것을 고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어느 정글러 챔피언이든 나올 수 있다. ‘이 챔피언을 해야겠다’ ‘상대가 이 챔피언을 했을 때 저 챔피언을 해야겠다’ ‘내가 이 챔피언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걸 골라도 괜찮겠다’와 같은 정리가 돼 있다. 상황에 따라 유리한 챔피언을 가져가는 편이다.”
물론 이승용이 마냥 수비적이기만 한 선수는 아니다. 올 시즌 킹존 드래곤X 상대로는 신 짜오를 두 번 골랐다. 데스 없이 14킬 12어시스트를 누적했다. 진에어 그린윙스전에서 선보인 이블린 플레이도 돋보였다. 해당 경기에서 상대의 카운터 정글링을 예측한 건 정글러 특유의 직감과 두뇌 플레이가 결합된, 올 시즌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고, 계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승용의 강점이다. 올 시즌 한화생명e스포츠전 1세트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승용은 ‘보노’ 김기범의 공격적인 카운터 정글링에 고전했지만, 침착하게 피해를 복구하며 되살아났다. 결국 후반 대규모 교전에서 정교한 스킬 샷으로 한화생명 주력 딜러를 묶어 ‘바이퍼’ 박도현의 카이사 캐리를 도왔다.
어쩌면 삼성 갤럭시(現 젠지)를 2017년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앰비션’ 강찬용(은퇴)과도 닮아있다. 실제로 강찬용은 이승용이 완성형 정글러로 거듭나기 전 영향을 받았던 선수 중 하나다.
15일 경기 후 국민일보와 만난 이승용은 “팀이 LCK로 승격하기 전 연습 경기에서 강찬용과 맞붙었다. 당시에 저는 뭣도 모르고 정글만 돌았다. 강찬용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숨겨져 있더라. 플레이를 보면서 저도 많이 터득했던 것 같다”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이승용은 최근 LoL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강찬용의 ‘타잔 분석 영상’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해당 영상을 봤는지 묻자 그는 “(강찬용이) 저를 굉장히 잘 분석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적으로도 분석을 잘한 것 같았다. 정리가 잘 돼 올라온 영상을 거의 다 본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해 서머 시즌 눈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내준 그리핀과 이승용이다. 올해는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각오다. 지난 2일 샌드박스 게이밍전에서 당했던 시즌 첫 세트패는 이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승용은 “우리도 못하면 충분히 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실수하지 않고, 더 완벽한 게임을 하자’고 피드백했다”고 전했다.
그리핀의 사냥터는 국내 무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LCK가 지난해 국제 무대에서 전례 없이 자존심을 구겼다. 그리핀이 새로운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 이승용은 국제 대회 선전을 자신한다. 그는 “매번 메타가 달라진다”면서도 “최대한 열심히 연습해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