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역전승을 숱하게 연출해내 한때 ‘수성의 젠지’로 불렸던 팀이었다. 경쟁자들마저 동경하던 ‘우직한 운영’으로 2017년 세계 정점에 섰던 팀이었다. 그랬던 젠지가 특유의 팀 컬러를 잃어버린 채 휘청거리고 있다.
젠지는 13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2019 스무살우리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정규 시즌 1라운드 경기에서 한화생명e스포츠에 세트스코어 0대2로 패배했다. 이날 경기 결과에 따라 시즌 2승5패(세트득실 -6)를 누적한 젠지는 9위로 추락했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도 아쉽지만, 경기 내용도 암담했다. 자랑과도 같았던 특유의 뒷심과 정교한 운영 능력이 종적을 감췄다. 이날 1세트에서는 초반을 유리하게 끌고 갔음에도 불구, 안일한 대처로 상대의 내셔 남작 사냥을 허용해 승기를 빼앗겼다. 이들은 버프 헌납 이후에도 한화생명 운영에 고전했다. 결국 내셔 남작 둥지 앞에서 자멸해 승점을 내줬다.
2세트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나왔다. 우위를 점해야 했던 운영에서 오히려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두 차례 화염 드래곤 전투에서 소득 없이 3킬씩을 빼앗겼다. 요릭의 스플릿 푸시에 대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이들은 내셔 남작 싸움에서 제대로 된 강타 싸움조차 해보지 못한 채 대패했고, 이내 무릎을 꿇었다.
앞서 지난 3일 킹존 드래곤X전에서도 자신들의 장기였던 장기전을 패배했던 젠지다. 1세트부터 리드를 점했지만, 마지막 대규모 교전에서 ‘데프트’ 김혁규(시비르) 견제에 실패해 패배했다. 3세트에선 김혁규(카이사)를 두 차례 암살해냈으나 이후 내셔 남작 둥지 앞에서 미숙한 운영 능력을 노출해 ‘카이사 엔딩’으로 게임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지난 3년 동안 팀 운영의 핵심이었던 ‘앰비션’ 강찬용과 ‘코어장전’ 조용인의 빈자리를 여전히 메우지 못한 것일까. 강찬용의 대체자 ‘피넛’ 한왕호는 새로운 길잡이로서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젠지에는 한왕호 외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만한 뉴페이스가 없다. 젠지는 지난 스토브 리그에 서브 정글러와 서포터를 영입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원거리 딜러 ‘룰러’ 박재혁에게 주어진 캐리 부담은 막중하다 못해 과중하다. 다른 라이너들은 게임 양상을 뒤바꿀 만큼의 캐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젠지를 상대했던 한화생명을 비롯, LCK 내 모든 경쟁자는 젠지가 원거리 딜러의 성장과 캐리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연스레 밴픽과 게임 운영에 대한 대비 또한 수월해진다.
결국 다시금 연패의 늪에 빠진 젠지다. 지난 2016년 서머 시즌부터 꾸준히 포스트 시즌 출석 도장을 찍어온 젠지지만, 올 시즌은 하위권 탈출을 목표로 삼게 됐다. 어느새 1라운드 경기는 단 두 경기만이 남았다. 상대는 1위 그리핀과 3위 SK텔레콤 T1이다. 단풍이 물들 때 가장 강한 팀인 젠지, 올해는 벚꽃이 피기도 전에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