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유치원 트라우마?…금 가고 기우뚱 ‘공사장 옆 유치원’ 또 논란

입력 2019-02-13 17:32 수정 2019-02-13 17:54

서울 구로구의 A유치원 교사들은 요즘 추운 날씨에도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업무를 본다. 지난해 8월 유치원 옆에서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시작됐고, 이후 유치원 건물이 기울고 외벽에도 금이 갔다. 유치원 관계자는 13일 “건물 1층 바닥엔 1m가 넘는 균열이 생겼고 바닥에 공을 두면 저절로 굴러갈 정도”라며 “혹시라도 붕괴 사고가 일어나면 대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다”고 말했다.

구청이 ‘안전하다’는 현장조사 결과를 내놓았지만 학부모들은 지난해 발생한 ‘상도 유치원 붕괴사고’ 트라우마(과거 사건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겪는 심리적 불안 증상)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상 징후가 발견된 건 지난해 12월. 건물 외벽과 바닥에 균열이 생겼고, 지난달엔 지하수 누수로 정화조가 터졌다. 놀란 교사와 학부모는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구청과 교육청은 3차례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안전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유치원 건물의 균열, 기울기 변화 등이 주변 공사로 인한 지반침식으로 발생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만 건물을 지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내력벽)이 아닌 곳에 균열이 생겼고, 기울기도 안전 수치 내라고 결론지었다.


유치원 관계자는 “건물이 기울어진 게 느껴지는데 구청에서 괜찮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유모씨는 “유치원 놀이터에서 보면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건물이 휘어진 게 보인다. 일부러 그 건물을 피해 아이를 등교시킨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요구로 이달 초 원생 교실은 균열이 생긴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옮겼다. 하지만 교무실 등 사무실은 기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계속된 항의에 지난달 말에는 현장조사를 실시한 안전진단 업체의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안전진단업체가 시공사 입맛에 맞게 결과를 내놓았을 가능성을 의심해 업체가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현장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는 이유로 트라우마를 꼽았다. 지난해 발생한 상도 유치원 붕괴사고의 경우 사고 발생 하루 전에도 안전대책 회의에서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홍진표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피해 건물이 유치원이라는 점, 공사가 굴착 단계라는 점 등에서 상도 유치원 사태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에 견줄 만한 불안감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과잉반응이라 치부하지 말고 구청이나 유치원 측에서 심리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공업체와 행정기관의 안이한 피해 관리가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종철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시공사가 안전 계측 관리를 제대로 했다면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기 전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안전 수치 내에 있다고 해도 비가 많이 오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건물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성도 중요하다. 대피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 탁상 행정”이라고 말했다.

교육시설 주변 공사 허가에 대한 규제가 없어 아이들과 학부모가 각종 위험, 소음에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치원 원장은 “1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공사장이 있으니 온갖 소음, 진동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다. 공사업체 노조까지 와서 시위를 하는데 막을 도리가 없어 답답하다”며 “안전 규정 부실로 피해를 학부모와 아이들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규영 최지웅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