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적(性的) 행위를 묘사한 소설·영화·사진·그림 따위를 통틀어 포르노라고 부른다. 하지만 포르노가 합법이 아닌 대한민국에서는 몰래 촬영돼 불법으로 유통되는 음란물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성에 대한 담론이 양지로 올라오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포르노가 ‘떳떳하지 못한 것’ ‘숨어서 봐야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청소년이 포르노를 보는 것은 탈선으로 여겨진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은 곧 음흉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포르노는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정부가 대대적인 해외 불법·유해사이트 규제를 실시했다. 사각지대였던 해외 사이트에서 반입되는 불법촬영 및 유포를 거르겠다는 취지다. 이용자들은 “인터넷 검열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반기를 들면서 ‘포르노 볼 권리’를 외치고 있다. 이제는 상업 포르노 합법화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우선 포르노 개념에 대한 정리부터 이뤄져야한다. 한국의 경우 현행법상 음란물은 개념이 명확지 않아 판례로 구분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포르노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어두운 분위기 아래 생식기에 얽힌 사건들을 기계적으로 반복·구성하는 음란물의 일종’이다. 형법 제243조는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 같은 음란물을 유포·판매하는 행위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간주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포르노를 음지에서 횡행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영상물로 인식하는 이유는 한국에 제대로된 포르노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불법 음란물 탓에 성에 대한 일탈과 왜곡된 인식 그리고 침략적·폭력적·일방적 성관계가 마치 남성에게 쾌락을 주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다”고 지적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의 “합법적 한국 배우의 포르노가 없는 상황에서 불법 제작된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가 이를 대체하고 있는 꼴”이라는 주장도 맥을 함께한다. 불법으로 촬영되고 유통되는 음란물에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대부분 여성이다.
선진국 대부분은 포르노를 합법화했다. 청소년 성교육을 합법적 포르노로 실시하는 곳도 많다. 영국 하원에서는 사춘기 이전 포르노물 실체에 대해 교육하는 정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의 경우 일반인 성관계 장면을 공영방송에서 그대로 노출한다. 성에 대한 건강하고 건전한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선진국에서 포르노가 양지로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뜻밖에도 포르노의 유해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순기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포르노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린든 존슨 대통령 집권 시절이던 1970년대다. 그는 포르노 유해성을 입증하려고 위원회를 구성해 연구에 착수했으나 예상 밖의 결론을 얻었다. 포르노가 남자의 성적 환상을 풀어 주고 성도착증을 대신 해결하는 순기능이 크다는 결과에 도달한 것이다. 위원회는 앞으로 미국 사회에서 포르노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후 영국 역시 윌리엄스 위원회를 구성해 포르노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결과는 미국과 같았다. 위원회는 “포르노는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많은 부분 해소시켜 주기 때문에 권장까지는 아니어도 딱히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발표했다.
덴마크에서는 1961년 포르노를 합법화한 이후 성범죄가 꾸준히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당시 의회는 “어차피 존재하는 포르노라면 양지로 끌어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로 성개방법을 입법 통과시켰다.
포르노 합법화를 찬성하는 이들은 “포르노를 문화이자 콘텐츠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포르노를 양지로 올린 뒤 세금을 걷는 식이 낫다는 의미다.
반면, 포르노 합법화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발표된 ‘포르노그래피와 성범죄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포르노 유통이 활발한 도시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성범죄 발생률이 높았다. 당시 시중에 유통됐던 포르노물 중 91%는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는 내용이었다. 강간범의 86%는 면식범이었고 강간 당한 여성의 21%는 처녀였다. 다만, 이 연구는 포르노가 유해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기 보다는 포르노 합법화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지난달 서울신문이 주최한 좌담회에 참석해 “일각에서 풍선효과로 내세우는 주장 중 하나가 포르노 합법화다. 포르노를 불법으로 막으니 풍선효과로 불법 촬영물 등이 판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논리적 비약이다. 불법 촬영물을 보는 사람들은 포르노는 조작이지만 불법 촬영물은 실제이고 희소성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포르노가 합법화돼도 불법 촬영물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삐뚤어진 욕망을 사회적으로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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