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세훈 파기환송심 재판장 ‘문답 각본’까지…양승태와 교감?

입력 2019-02-13 14:41 수정 2019-02-13 15:34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박원순 제압문건 관련 7차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015년 사건 배당 뒤 무죄를 유도하기 위해 검사·변호인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까지 준비한 사실이 13일 드러났다. 검찰은 ‘박근혜 청와대’와 교감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당시 김 부장판사가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한 정황이 드러난다. 김 부장판사는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 입장을 배척하기로 사전에 결론을 내린 뒤 결론 유도를 위해 검사·변호인을 상대로 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시나리오가 심리에 활용됐다고 보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사전에 무죄 판결문 초안까지 작성해두고 무죄 선고를 시도했으나 당시 주심이었던 최모 판사의 반대로 이를 실행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초안은 국정원 심리전단팀과 원 전 원장 사이의 공모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무죄로 본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후 2017년 2월 정기 인사로 교체됐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의 지시를 받고 무죄 선고를 강행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한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 외부의 직권남용 의혹 행위가 원 전 원장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친 적이 전혀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김 부장판사는 전병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재판 청탁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전 전 의원은 2014년 1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자신의 친인척인 임모 보좌관을 재판에서 선처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임 전 차장은 2015년 4월 임씨에 대한 파기환송심 분석 문건을 작성해 전달했다. 문건에는 “예상 선고 형량은 8개월이고 가벼운 형을 받기 위해서는 보석이 필요하다”는 소송 전략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김 부장판사는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다. 그는 임 전 차장 측이 세운 전략과 동일하게 2015년 5월 임씨를 보석으로 석방한 뒤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선고 직후 판결 관련 정보를 이메일로 임 전 차장에게 전달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 재판도 행정처와 ‘교감’하에 진행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검찰은 관련 조사를 위해 김 부장판사를 상대로 수차례 소환 통보했으나 그는 거듭 불응하고 있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