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들이 헌재에서 진행 중인 민감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대법원에 잘 전달해야 한다”며 헌재 기밀 유출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내부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외에도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제 전범기업을 대리했던 법무법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와 4차례 만나 소송 진행 방향을 긴밀히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2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에게 “‘헌법재판관들이 위헌 판단에 신중해질 수 있도록 헌재 파견 법관들이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며 “파견 법관들이 헌재가 진행하는 민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대법원에 잘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아울러 이 전 실장에게 헌재 관련 정보 확보 및 대응책 마련 등 헌재 관련 업무를 총괄하라고 지시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도 그 즈음 이 전 실장에게 “헌재 관련, 파견 법관을 활용하되 보안을 위해 일부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는 법관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하달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파견 법관들은 그 후 2년간 헌재 내부 정보 325건을 수집해 이 전 실장 등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 검찰은 이 같은 지시가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소장에 이를 적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 개입 과정에서 김앤장 측과 긴밀하게 논의를 이어간 점도 공소장에 드러났다. 그는 2013년 3월 평소 막역한 사이였던 김앤장 소속 한상호 변호사를 직접 만나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 (강제징용 소송을) 선고했다”며 “한·일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결론이 적정한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대법원에서 내린 강제징용 소송 판결에 대한 불만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김앤장 소속 인사들은 일본 측 인사들과 교감하며 2012년 판결 결과를 번복하는 방법을 논의 중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심증’을 파악한 외교부는 그 이후 판결 번복을 위해 청와대, 대법원을 전방위 압박했다. 대법원은 앞서 2012년 5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재판을 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1965년 이뤄진 한일청구권 협정(한일협정)과는 무관하게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대법원, 외교부, 청와대는 김앤장과 함께 ‘김앤장의 정부 의견 요청서 제출’ ‘법정 조언자 제도를 활용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대법원의 해당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 등 판결 번복 시나리오를 수립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시나리오 수립 이후인 2015년 1월 한 변호사를 다시 만나 “외교부의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를 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외교부가 소극적이어서 걱정”이라는 한 변호사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5월, 2016년 10월 한 변호사를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만나 강제징용 소송의 전합 회부 여부 등을 거듭 확인해줬다. 한 변호사는 당시 “외교부 의견서 제출과 관련해 임종헌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대로 진행을 하겠다” “외교부가 이번엔 잘하겠지요”라고 말했고 양 전 대법원장은 “잘 알겠다” “잘 되겠지요”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