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한 고(故)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설 당일 고향에 가자던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자 아내는 4일 오후 6시쯤 센터장 사무실을 찾았고, 의자에 숨진 채 앉아있는 남편과 맞닥뜨렸다. 아내 A씨는 당시 심경에 대해 “결국 이렇게 됐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A씨는 “(숨진 남편을) 처음 봤을 때 과로해서 결국 이렇게 됐구나, 너무 늦었구나 싶었다”며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고 11일 중앙일보에 밝혔다. A씨는 지난 10일 오전에 엄수된 영결식을 끝으로 남편을 떠나보냈다. 두 아들과 윤 센터장의 동료 직원 300여명이 함께했다. 윤 센터장이 영면에 든 곳은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유족이 그의 영정을 들고 집무실이 있는 의료원 ‘행정동’을 한 바퀴 돈 뒤 장지로 향했다.
A씨가 남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지난 1일이었다. 둘째 아들이 진학할 고등학교가 발표된 날이었다. 첫째가 다닌 고교에 지망했는데 원하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평소 휴대전화를 잘 확인하지 않던 남편이 ‘거기 안됐다’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곧장 전화를 걸어왔다. 윤 센터장은 아내에게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 뒤 둘째 아들을 바꿔 달라고 했다. 아쉽게도 아들이 A씨 곁에 없어 윤 센터장은 끝내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 센터장은 생전에 밤낮 가리지 않고 업무만 봤다. 퇴근은 일주일에 하루, 저녁 몇 시간이 전부였다. A씨는 윤 센터장이 “일요일 저녁 7시 반쯤 집에 와서 15분 정도 저녁을 먹은 뒤 쓰러져 잠들곤 했다. 자정쯤 일어나 다시 출근했는데, 새벽 4시까지 업무를 본다더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 전에도 일주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져있던 윤 센터장 책상에 놓인 것은 전국 응급의료기관의 운영현황, 외상센터 개선방안 등 각종 서류였다.
A씨와 윤 센터장은 전남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부부가 됐다. A씨는 수련의였던 남편이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며 “그때부터 그런 꿈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A씨가 언급한 윤 센터장의 ‘그런 꿈’은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발전을 이뤄냈다. ‘응급 의료 전용 헬기(닥터헬기)’ 도입에 성공했고, 응급진료 정보망을 구축해냈다.
윤 센터장의 첫째 아들 형찬군은 영결식장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며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늘 옳은 일이라 여기며 지지했다. 함께한 시간은 적지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했다. 또 “아버지는 종종 ‘넌 생각이 나와 똑같아, 닮았어’라고 했다”며 “저는 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기에 아버지가 늘 가족에게 미안해하시던 것을 안다. 이제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LG복지재단은 윤 센터장에게 의인상을 수여하고 유족에게 위로금 1억원을 전달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윤 센터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해 국가보훈처 등과 협의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검 결과 윤 센터장의 사인은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심장사. 의료원과 유족은 과로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