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한덕 아내 “마지막 통화는 둘째 학교 발표날…결국 이렇게 됐다”

입력 2019-02-12 11:10 수정 2019-02-13 01:43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사망한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0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유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뉴시스

국내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한 고(故)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설 당일 고향에 가자던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자 아내는 4일 오후 6시쯤 센터장 사무실을 찾았고, 의자에 숨진 채 앉아있는 남편과 맞닥뜨렸다. 아내 A씨는 당시 심경에 대해 “결국 이렇게 됐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A씨는 “(숨진 남편을) 처음 봤을 때 과로해서 결국 이렇게 됐구나, 너무 늦었구나 싶었다”며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고 11일 중앙일보에 밝혔다. A씨는 지난 10일 오전에 엄수된 영결식을 끝으로 남편을 떠나보냈다. 두 아들과 윤 센터장의 동료 직원 300여명이 함께했다. 윤 센터장이 영면에 든 곳은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유족이 그의 영정을 들고 집무실이 있는 의료원 ‘행정동’을 한 바퀴 돈 뒤 장지로 향했다.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사망한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0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윤 센터장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사무실을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A씨가 남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지난 1일이었다. 둘째 아들이 진학할 고등학교가 발표된 날이었다. 첫째가 다닌 고교에 지망했는데 원하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평소 휴대전화를 잘 확인하지 않던 남편이 ‘거기 안됐다’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곧장 전화를 걸어왔다. 윤 센터장은 아내에게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 뒤 둘째 아들을 바꿔 달라고 했다. 아쉽게도 아들이 A씨 곁에 없어 윤 센터장은 끝내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 센터장은 생전에 밤낮 가리지 않고 업무만 봤다. 퇴근은 일주일에 하루, 저녁 몇 시간이 전부였다. A씨는 윤 센터장이 “일요일 저녁 7시 반쯤 집에 와서 15분 정도 저녁을 먹은 뒤 쓰러져 잠들곤 했다. 자정쯤 일어나 다시 출근했는데, 새벽 4시까지 업무를 본다더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 전에도 일주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져있던 윤 센터장 책상에 놓인 것은 전국 응급의료기관의 운영현황, 외상센터 개선방안 등 각종 서류였다.

A씨와 윤 센터장은 전남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부부가 됐다. A씨는 수련의였던 남편이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며 “그때부터 그런 꿈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A씨가 언급한 윤 센터장의 ‘그런 꿈’은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발전을 이뤄냈다. ‘응급 의료 전용 헬기(닥터헬기)’ 도입에 성공했고, 응급진료 정보망을 구축해냈다.

10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내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집무실 앞에 국화와 커피, 전자담배가 놓여있다. 뉴시스

윤 센터장의 첫째 아들 형찬군은 영결식장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며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늘 옳은 일이라 여기며 지지했다. 함께한 시간은 적지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했다. 또 “아버지는 종종 ‘넌 생각이 나와 똑같아, 닮았어’라고 했다”며 “저는 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기에 아버지가 늘 가족에게 미안해하시던 것을 안다. 이제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LG복지재단은 윤 센터장에게 의인상을 수여하고 유족에게 위로금 1억원을 전달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윤 센터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해 국가보훈처 등과 협의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검 결과 윤 센터장의 사인은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심장사. 의료원과 유족은 과로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