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무게 있게 보도한 뉴욕타임스(NYT)에게 일본 정부가 “과거 성실한 사죄를 했다”며 반론했다. 그러자 정의기억연대 등 국내 시민단체가 “사죄받은 피해자는 없다.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즉각 철회하라”고 호통쳤다.
정의연 등 시민단체는 11일 성명서를 통해 “일본 정부는 김복동 할머니 앞에서 사죄하라”며 이 같이 비판했다.
NY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한 배상 촉구해 온 전시 성노예 김복동, 92세에 숨을 거두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NYT는 “김 할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여성들이 견뎌 온 고통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그는 불굴의 활동가였다”고 회고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우리는 여러 차례 위안부에 대한 성실한 사죄와 회한의 뜻을 전달해 왔다”며 외무성 보도관 명의의 반론문을 NYT에 보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보상 문제가 합법적으로 해결됐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심리적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연 등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법적인 책임을 인정조차 하지 않았고 보상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는 모순된 인식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할 일은 김 할머니를 비롯해 이미 고인이 됐거나 생존해 있는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해국 일본 정부는 반성은커녕 언론(NYT)을 향해 항의하고, 사죄받은 피해자는 없는데 성실히 사죄했다며 고인을 공격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재력·권력을 앞세워 평화비와 기림비 철거를 압박하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제기조차 되지 못하게 온갖 만행을 저지르면서 사죄해왔다는 주장을 누가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3일 영국 BBC방송도 김 할머니를 조명했다. BBC는 “그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김 할머니는 침묵을 거부한 성노예”라고 평가했다. 이어 “10대를 갓 넘긴 어린 나이에 강제로 접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베트남 등 전쟁으로 희생 당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김 할머니가 유언으로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현했다”며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