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배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일본 유명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부당한 현실을 묵과하지 말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해달라”는 취지의 성명서를 영화제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다음달 7일 막을 올리는 일본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일본 내 가장 큰 영화제 중 하나다. 영화제 측은 개막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을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여성단체를 비롯해 곳곳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김 감독의 복귀 무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SNS 상에는 #김기덕_개막작_취소하라 #그건_연출이_아니라_성폭력입니다 #STOP_영화계_내_인권침해 #MeToo 등의 해시태그가 줄을 잇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는 9일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관계자 여러분께: 김기덕 감독 영화 개막작 초청에 부쳐’라는 제목의 항의서한을 공개했다.
민우회는 “이 영화는 지난해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당시에도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흐름과 맞지 않은 내용으로 냉담한 평가를 받았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촬영과정에서 ‘연기지도’라는 어이없는 폭행에 대해 벌금형을 받았음에도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변명과 억울함을 호소하여 비판받은 바 있다”고 적었다.
이어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봉이 취소된 것이다. 귀 영화제는 2017년 한국에서는 ‘남배우A 성폭력사건’으로 알려진 가해자가 주연인 영화를 초청한 바 있다. 그런데 또 다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가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영화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성폭력, 인권침해의 문제에 침묵하고 가해자들을 계속 지원하거나 초청하고, 캐스팅하기 때문이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를 보니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재미있지 않다. 김기덕 감독 영화 개막작 초청을 취소해달라. 영화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부당한 현실을 묵과하지 말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다.
민우회 측은 해당 내용을 번역해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주최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