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구속 기소… 검찰 수사 일단락

입력 2019-02-11 14:00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2019.01.23. 뉴시스.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결국 11일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11일 검찰에 출석해 첫 조사를 받은지 정확히 한 달만에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이자 최종 책임자로서 기소된 것이다. 전‧현직을 막론하고 ‘사법부 수장’이 기소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박병대(62)·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함께 기소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시작된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는 일단락됐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는 11일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등을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일련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직접 개입하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행정소송,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의 지위 확인 행정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와 공보관실 운영비로 3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도 받는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개별 범죄사실은 47개로 앞서 구속영장에 적용된 범죄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왼쪽) 전 대법관과 고영한(오른쪽) 전 대법관의 구속 영장을 기각해 7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18.12.07. 뉴시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이날 함께 재판에 넘겼다. 두 전직 행정처장은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에 반대한 특정 법관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실행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총 19차례 무단 접속해 고교 후배의 형사사건 진행상황을 알아본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 결정을 받았다. 박 전 대법관은 한 차례 더 영장이 청구됐으나 이 역시 기각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법농단 의혹의 ‘중간 책임자’로 지목돼 지난해 11월 전․현직 법관 중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60) 전 행정처 차장도 이날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한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을 기소하면서 사법농단 의혹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됐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 가운데 추가로 재판에 넘길 대상을 추려 향후 기소할 예정이다. 또 양승태 사법부에 재판 관련 청탁을 한 의혹을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전‧현직 국회의원들에 대해선 기소 여부를 결정한 뒤 이달 내 사법농단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