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세입자 발 뻗고 잘 때 5억짜리 집주인은 잠 못 들었다

입력 2019-02-10 17:32
게티이미지뱅크

결혼 5년차 직장인 A씨(38)는 3년 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약 5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했다. 전세금에 은행 대출, 퇴직금까지 중간 정산해 구입한 집이었다. 그런 A씨는 최근 정부에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대학 후배인 B씨가 부모님 도움으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13억원짜리 전셋집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다.

A씨의 배신감은 세금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조세 형평성에 나서겠다며 공시지가 현실화를 예고했다. 이에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9.13% 상승했다. 특히 서울은 17.75% 올랐다. 오는 4월 발표할 아파트값 공시가격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각종 세금을 공시가 기준으로 산정하다 보니 A씨로선 세금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싼 집에 살고 있는 B씨는 세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주택 소유자가 아닌 세입자라는 게 이유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고가 아파트에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세입자와 상대적으로 저가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집주인 중 어느 쪽이 더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실제 최근 전세가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집값에 버금가는 전셋집들은 여전히 많다. 부동산정보서비스 직방이 지난달 발표한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 분석결과’를 보면 2018년 전국 전세 최고가 아파트 단지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갤러리아포레였다. 지난해 11월 50억 원(전용 271.38㎡), 전용 3.3㎡당 6085만원이었다. 경기도에서는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판교알파리움 2단지로 지난해 11월 20억원(전용 203.77㎡), 전용 3.3㎡당 3241만원을 기록했다. 지방에서는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가 지난해 4월에 14억원(전용 204.07㎡)으로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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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부는 주택 소유자만 잠재적 부동산 투기꾼으로 봤다. 지난해 내놓은 보유세 개편안도 집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왜곡된 공시가격을 바로잡겠다고도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했을 때도 “공시가격을 바로잡는 것은 공평과세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오랜 바람”이라며 “최근 실거래가가 급등한 곳의 공시가격을 큰 폭으로 올려 형평성을 제고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B씨의 전세가는 A씨의 아파트 두 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지만 내야 할 세금은 없었다. A씨는 5억원대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600여만원의 취득세, 교육세 등을 냈고 매년 재산세를 내고 있다. 그나마 9억원 이하 주택이라 종합부동산세는 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저가의 주택 소유자들 사이에서 과세 형평성을 두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고가의 전세 아파트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고가 아파트 전세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세율을 어느 정도 적용할지 애매해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 투자자문센터 세무팀장은 “집값이 오르면 집 주인에게 이득이 갈 뿐이지 세입자에겐 이득이 없어 세금을 부과하는 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1주택자에 대해서는 보유세 부과를 조정하거나 거래세를 인하하는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