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 브랜드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광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질레트와 나이키가 대표적인데, 반응은 엇갈렸다. 질레트 광고에 혹평으로 일관하던 소비자들이 나이키에게는 박수를 보냈다. 무슨 차이일까.
페미니즘 긍정적 기능 극대화한 나이키
“넌 어떤 사람이 될래 하나만 정답이라고? 둘 다 하면 안 돼? 과거가 너의 미래를 만든다고? 성적이 네 목표를 이루게 해준다고? 보여지는게 중요하다고? 남들이 정해준대로 할 거야? 네 뜻대로 할 수는 없는거야? 너 스스로를 믿을 때 네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거든. 넌 너만이 만들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야.”
나이키가 ‘2019 Women’s Just Do IT(우먼스 저스트 두잇)’ 캠페인 일환으로 공개한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영상 속 내레이션이다. 나이키는 지난달 30일 전진하는 여성을 지지하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겠다는 취지의 영상을 올렸다. 방송인 박나래, 가수 엠버와 청하, 축구선수 지소연, 골프선수 박성현이 출연했다. 내레이션은 가수 보아가 맡았다.
영상은 돌잡이 상에 앉은 여자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이는 축구공을 잡았다.이 때 가수 보아의 목소리로 “넌 어떤 사람이 될래? 남들이 정해준대로 할 거야? 네 뜻대로 할 수는 없는거야? 너 스스로를 믿을 때 네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거든”이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후 꽃과 권투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면서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된 성 역할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차례로 담았다. 영상 속 여성들은 축구에 열광하고 익스트림 자전거에 몸을 맡기며 휠체어를 타고 농구를 즐긴다. 춤 연습을 하는 가수 청하, 스스로 원하는 인생을 향해 나아가듯 힘차게 달리는 가수 엠버와 방송인 박나래도 등장한다.
영상에 등장한 포스트잇에는 ‘내 몸은 나의 것’ ‘WITHYOU’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움직일 차례’ ‘용기있는 발언을 지지한다’ ‘고개 들어, 우리가 늘 함께니까’ 등 최근 이슈가 된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적혀있다.
특히 네티즌이 박수를 보낸 장면은 부엌에서 냄비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대다수는 요리를 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으나 실은 복싱 등 격렬한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마우스피스를 삶는 모습이었다. ‘요리는 여성의 몫’이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설정이었다. 네티즌은 “마우스피스 삶는 거 대박이다” “요리하는 줄 알았는데 마우스피스 소독하는거, 내가 고정관념이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나이키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결정권을 놓지 않고 스스로 참된 가치를 찾아 나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대중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한계를 끊임없이 넓혀가는 여성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메시지를 힘있게 전달했다.
한 네티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과 ‘여성들 스스로가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나란히 보여준게 정말 효과적인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보여준 광고라니, 너무 멋있다. 비장애인 젊은 여성만 보여준게 아니라 장애인 여성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을 보여준 점도 좋다”고 호평했다.
의도는 알겠지만… 계몽적 방식으로 백래시 맞은 질레트
반면 미투 운동 지지를 담은 질레트의 광고는 극심한 찬반양론을 낳았다. “변화하는 새 시대에 걸맞은 남성성을 선보였다”는 긍정적 의견도 있었으나 “일부 남성들의 행동으로 모든 남성을 비난했다”는 뭇매를 피할 수 없었다. 불매운동이 번질 만큼 큰 후폭풍을 불러왔다.
지난달 창립 30주년을 맞은 질레트는 기존 슬로건이었던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The Best a Man Can Get)’을 내던지고 ‘당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남성(The Best Men Can Be)’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내걸었다.
질레트는 유해한 남성성에 집중했다. 광고는 미투 사건 등을 보도하는 뉴스 화면으로 시작된다. 집단 괴롭힘, 성추행 장면 등을 삽입해 남성에게 씌워진 기존의 고정관념을 조명했다. 따돌림 당하는 남성을 조롱하는 등 강한 남성성을 지녀야한다는 사회적 인식이나 여성을 성추행하는 남성의 모습을 희화화하는 작태를 꼬집으려는 취지로 보인다. “사내는 역시 다 그렇지” 같은 말로 이를 방관하는 문화도 함께 지적했다.
이후 질레트는 “이것이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변화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행동을 다음 세대가 보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후폭풍은 거셌다. 특히 주 소비층인 남성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동안 질레트는 근육질의 남성,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남성 등의 모습을 담은 광고를 통해 강한 남성성을 지향해왔다.
남성 대다수는 “남성 소비자에게 면도기를 파는 회사에서 왜 자신들이 고수하던 남성성을 부정하느냐”고 반발했다. 아울러 “남성은 괴물이 아니다” “일부의 행동으로 모든 남성 전체를 비난한다” “잘못된 추정에 기반해 만들어진 광고” “정치적 올바름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일부 남성들은 질레트 면도기를 변기에 버리는 사진을 인증하며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문제는 표현방식?
심리학자들은 불특정 다수를 설득할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대중을 계몽하려는 방식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잘못해왔으니 앞으로는 잘해야한다’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면 외면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설득의 수단 3가지 중 ‘파토스’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에 호소할 때는 지나치게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 이 경우 청중의 심리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질레트의 사례가 그렇다. 남성을 주요 고객층으로 상대하는 회사에서 이들을 위협하는 광고를 냈으니 반발이 특히 거센 것은 당연한 셈이다.
반면 나이키는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소비자인 여성의 자존감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설득의 기본은 대중의 감성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뇌학자들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 주로 감정에 의존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감성 마케팅이 인기를 끄는 이유 역시 정서 중심의 자극을 통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쌓기 위해서다.
즉 공익적인 메시지를 담을 때, 특히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일 경우 메시지를 긍정적인 이미지와 결합시켜야 효과가 크다. 남녀관계를 다룰 때도 남성을 공격하기보다 여성을 감동시키는 방식이 낫다. 바로 나이키의 전략이다. 여성의 욕구와 감성에 호소하면서 동기를 부여하는 설득의 방식을 사용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