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균이는 2달 동안… 어느 부모가 그렇게 두고 싶었겠느냐”

입력 2019-02-08 18:12
고 김용균씨 빈소에 붙은 추모 쪽지(왼쪽)와 유족 김미숙씨, 김해기씨. 뉴시스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미숙씨는 두 달 간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아들의 억울함이 풀려야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들이 영안실에 누워있는 동안 김씨는 거리로 나갔다. 6번의 추모제에 참석했고, 국회도 방문했다. 아들의 죽음이 어머니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한국서부발전의 협력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고(故) 김용균씨의 빈소가 7일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사흘간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11일 오전 3시20분쯤 한국서부발전에서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의 연료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석탄운송 작업 중 당한 참변이었다.

김미숙씨는 사고 발생 60여일 만에야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그는 장례 첫날 기자들과 만나 “2달간 (아들이) 냉동고에 눕혀져 있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어느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두고 싶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누명을 벗겨야 하고, 용균이의 동료들도 지켜야 했다”고 덧붙였다.

고 김용균 씨의 빈소가 마련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시스

고인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 대책 논의에 불을 붙였다. 발전소 점검 업무는 2인1조로 이뤄져야 했지만 인원과 예산을 핑계로 지켜지지 않은 것, 하청노동자들의 위험 설비 개선 요구가 지속적으로 묵살된 것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나온 65명의 사상자 중 하청업체 직원은 97%에 달했다. 결국 하청노동자만 위험으로 내몰리는 구조 속에서 같은 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원청인 서부발전 측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김씨는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마이크를 들었다. 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이 지난해 12월 27일 38년 만에 개정됐지만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김씨는 다시 단상에 올랐다. 청와대 분수대와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후속 대책을 내놨고, 서부발전과의 협상도 타결됐다.

김씨는 “설 전에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많이 이야기했는데 다행히도 명절 연휴 첫날부터 협상이 시작됐고 6일 아침에 마무리가 됐다”며 “합의 성과가 미미한 부분도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용균이를 잘 보내는 것만 생각하려고 한다”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다른 동료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왜 이렇게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용균이의 죽음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늦었지만 이제부터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용균이 동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고인의 빈소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추모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찾아와 유족을 위로했고,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방문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빈소를 찾았다. 고인과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 동료들은 3명씩 3팀을 이뤄 번갈아 가며 상주 역할을 맡고 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8일 오후 7시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기리는 촛불 문화제를 연다. 발인은 9일 오전 4시에 엄수되고, 태안화력발전소와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각각 1, 2차 노제가 있을 예정이다. 고인의 장지는 전태일 열사가 잠든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마련됐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