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이 확고한 편이다. 한번 믿음을 준 선수를 계속 같은 포지션에 기용하며, 베스트 11에 큰 변화를 두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정황은 그간 벤투 감독 부임 후 치렀던 한국 A매치들을 살펴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선 유기적인 전술 다변화를 하지 못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수비적으로 잔뜩 내려앉아 경기운영을 펼치던 상대들이 서서히 적응한 탓이다. 상대의 전술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다 보니 측면에서 무의미한 크로스만 남발하는 때도 생겼다.
플랜A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바탕도 있었다. 아시안컵까지 벤투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적 제한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토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이는 수차례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벤투 감독의 발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시안컵 실패는 많은 교훈을 가져다 줬다. 이젠 전술적 다변화에 대해 고민할 차례다. 세트피스 비롯해 더욱 다양한 공격루트 찾기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큰 고민은 손흥민의 활용이다. 손흥민은 지난 아시안컵 합류 직전까지 소속팀 토트넘에서 8경기 7골을 터뜨리는 등 놀라운 골 감각을 과시했다. 하지만 벤투호에선 상황이 달랐다. 최전방엔 원톱 황의조가 있었고, 그 아래 왼쪽 측면으로 위치가 제한됐다. 종종 중앙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긴 했지만, 토트넘 때처럼 직접 상대의 골문을 노리긴 쉽지 않았다. 만났던 상대들 역시 이점을 공략해 2선에서부터 손흥민을 압박했다. 손흥민의 침묵은 비단 아시안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이후 A매치에서 단 한 번도 득점을 맛보지 못했다. 벤투의 손흥민 활용에 대해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최근 토트넘이 선보인 손흥민과 페르난도 요렌테의 조합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최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주포인 해리 케인을 잃고 손흥민을 활용한 공격루트 찾기에 집중하고 있다. 루카스 모우라, 에릭 라멜라를 번갈아 최전방에 위치시키며 손흥민을 측면에도 놓아봤고, 요렌테 바로 아랫선에서 플레이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공격 상황 시 측면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진을 전방 압박하는 가운데 요렌테가 페널티박스 내에서 몸싸움을 펼친다. 이후 포스트 플레이나 세컨드 볼 과정에서 손흥민이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벤투 감독이 황의조 원톱에 대한 신념을 굽힌다면 보다 다양한 공격 옵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대일 돌파에 장점을 보이는 황희찬이나 발재간과 스피드를 겸비한 이승우를 측면에서 활용하며, 손흥민을 앞으로 전진 배치해 황의조와 투톱 형태로 배치하면 더 활발한 공격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최근 프랑스 리그1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권창훈 역시 또 다른 창으로 활용할 수 있다.
4-2-3-1의 황의조 원톱은 벤투 감독이 가지고 있는 현재 가장 강력한 카드다. 서로 그동안 많이 연습했던 플레이기도 하다. 다만 공격을 다양화하는 상황이 지속될 때 무언가 흐름을 바꿀 다른 옵션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 벤투 감독이 꺼내 들었던 실험적인 카드는 지난달 1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0대 0)에서 나온 스리백 정도였다. 아시안컵에서 나온 고정된 플랜A 운용을 복기하며 특별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송태화 객원기자